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작은 손에 가만히 나의 손가락을 가져다대면 익숙하다는 듯이 처음 만난 내 손가락을 꼬-옥 하고 잡는다. 그러면 그 자그맣고 부드러운 손길에 나 또한 작은 아기의 손을 따뜻하게 감싼다.우리들은 태생적으로 무언가를 놓는 일 보다 품에 안는 일이 훨씬 익숙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만난 손가락을 꼬옥 감싸는 시기가 지나면 딸랑딸랑 귀여운 소리를 내는 딸랑이를 손에 꼭 쥔채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영양분을 주는 엄마의 젖꼭지 대신 공갈 젖꼭지를 입안에서 뱉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놓는다는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무언가를 쥐고 안고있는것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시간이 지나 아기가 자라고 우리들이 자라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수도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품에 안을 수 있는 것들 만큼, 놓아야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갈구하던 애정을 놓아야하고, 주어지지 않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속에서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할 시간을 놓아야 하며, 아뿔싸. 무릎을 치게만드는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들을 만난적 없었다는 듯 놓아줘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놓을 수 있던 놓기 어려운 것들은 또 시간이 지나고 많은 날들이 지나고 나면, 생각뿐만 아니라 생각처럼 되지 않는 ‘마음’에서도 놓아야 하는 것들이 찾아온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눈을 감고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나를 떠나지 않는 누군가를 놓아야하는 순간이 오고, 행복으로 가득했던 누군가와의 추억과 많은 날들과 시간과 그 때의 나 자신 까지도 놓아야하는 참기힘든 순간을 놓아야 하는 순간들까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놓아야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찾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 그 ‘순간’은 지나지 않는다는걸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놓고싶지 않은 것들을 하나 둘 놓아야하는 순간들이 찾아오면서,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놓는 연습에 몰두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필요없는 것들을 붙잡고있는 쓸데없는 집착들을 조금씩 놓아가고있다. 쓰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을 왠지 언젠가는 입을 것 같은 느낌에 버리지 못한다던가 지나간 누군가와 나눈 대화들이 담긴 메시지방에 애꿎은 미련이 남아 훗날의 외로울 ‘어느’날을 위해 남겨놓는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욕심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있다. 다시는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중고서점에 판다던지, 지난학기에 열심히 써내려간 강의내용이 담긴 다 쓴 노트들을 버린다던지. 다 읽은 책들을 다시는 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고 지난 강의내용을 적은 노트들을 두번다시 펼쳐보지 않을 것이라는것 또한 잘 알면서 쉽사리 노트를 버리고 책을 팔지 못한다.
두 눈을 기다란 천으로 가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집기위해 허공에 두 손을 흔들듯, 버리고만 무언가를 언젠가는 그리워할것 같은 미련한 느낌에 다 쓰고, 다 읽고, 의미없어진 무언가를 쉽사리 놓지 못한다. 지나간 누군가를 붙잡은 채 놓지 못하듯, 나는 여전히 다 써버린 노트조차 버리지 못한다. 절대로 놓고싶지 않았던 몇몇 것들을 놓는 순간들이 나를 지나쳤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놓는다는 것’은 힘들고 잔인하고 눈물나는 순간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또한 그들을 지나치거나 지나쳤거나 지나칠 많은 것들을 먼지털듯 두손 탁.하고 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놓아야만 한다. 지나친 많은 것들을 놓아야만 새로운 것이 찾아오고, 또 털어내야만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놓고싶지 않은 것들을 놓아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때, 그 어떨때보다도 불안함을 느낀다.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될것만 같은 느낌과 놓아야하는 무언가를 의미없이 계속해서 기다린다. 그러다보면 기다리는 내 자신이 거울에 비친 듯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선명하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진절머리나게 싫어지기도 한다. 아무 관련없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하면서 비어진 시간을 채우려고 발버둥치기도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이미 본 영화를 까만 모니터에 띄운채 멍 하게 의자에 앉아있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이 드는 순간은 이렇듯 다가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거나, 놓고싶지 않은 무언가를 놓아야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있듯, 누군가를 뜬눈으로 기다리는일도 무언가를 놓아하는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듯 나는 멀쩡히 살아간다. 그저 그 암흑같은 시간들만 두 눈 감고 지나보내고 나면 불안함으로 가득차있던 기분나쁜 순간들은 왜 그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된다.
그저 그 순간을 지나보내는 일이 조금 괴로울 뿐이다. 그러니 괴로운 지금보다 왜 괴로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게 될, 곧 다가올 평평한 시간을 생각하며 그렇게 두 눈을 감고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