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죽지 않는다'의 후편
궁댕이를 들썩이던 자리를 드디어 박차고 나왔다. 아니 박차고 나오려 했지만 이게 내가 박차고 나온건지, 회사에서 내 궁댕이를 발로 걷어차 쫓아낸건지 알 턱이 없다. 찝찝했고 속상하고,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서운한 이별이 눈물을 쏟게했다. 개같은 퇴사였다.
앞서 기록한 ‘나는 기죽지 않는다’의 마지막을 보면
가해자(사수)는 나의 업무와 법인카드를 가져갔다. 경솔한 행동이었고 본인을 무덤으로 직접 파묻었다. 이사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이사는 면담을 받아들였다. 모든 걸 얘기했다.
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래, 모든 걸 얘기했다.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면담 후에도 이사는 사수가 절차없이 부당하게 가져간 업무와 나의 식대가 포함되어있는 법인카드를 돌려줄 처치를 해주지 않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했다. 그래, ‘이사’에게는 사원 나부랭이 하나가 징징거리는 꼴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나는 무려 일년 반을 견디다못해 너에게 손을 잡아달라며 손을 내민거였는데. 금요일에 나와 면담을 마친 이사는 다음주 월요일 가해자를 면담한다 했고 월요일이 되었다. 둘은 면담을 진행하는듯 보였고 면담이 끝난 후 하하호호 웃으며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잘못됨이 틀림없었다.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 자리를 틀어잡고 있었다. 억울했다. 결론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어느 주 ‘목’요일에 사수에게 그간 겪었던 감정적 피해를 말해 맞부딪혔고 나는 그 다음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회사는 나를 일주일만에 내보냈다. 그나마도 앉아있던 일주일간 나는 사수가 뺏어간 업무 덕분에, 본인 마음대로 가져갔던 법인카드 덕분에 빈 책상에 앉아 시간을 때우기 바빴고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팀에게 법카를 빌려 배를 채울 수 밖에 없었다. 회사는 나를 방치했고 비참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수를 제외한 주변 회사사람들과는 허물없이 잘 지내왔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사수가 나를 괴롭히던 그간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기분좋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교통사고도 아니고 몇대 몇, 잘못한 비율을 나눌 순 없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격모독이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저급한 말들을 내뱉은 사수의 잘못이 너무나도 확연하였기에, 마음대로 업무와 법인키드를 뺏어간 멍청함을 안쓰러워할 수 밖에 없었기에 나는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즐겁게 웃었고 사람들과 대화했다. 사람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를 이해해주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퇴사는 비단 나에게뿐만이 아니었다. 내일까지 일하게 돼었다는 나의 말을 듣는 많은 이들은 아쉬움으로 가득찬 손을 내밀어주었고 나는 서운함으로 가득한 눈물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이들과 헤어져야하는 것이 이 개같은 퇴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하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을 한 순간에 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그 먹먹함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한참을 멍허니 앉아있었다. 그렇게 빨리 나가라는 담당부서 이사의 손에 등 떠밀린채 자리를 비우고 회사를 떠났다. 부당했고 억울했다. 사람들과의 이별이 서운하고 가슴아팠다.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한대로,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익을 우선시한다. 사회는 거지같고 냉철하고 이기적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또한 그렇다. 이번 회사생활에서는 수도 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감정을 소비했고, 머리가 터질듯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나 여러방향으로 가지를 뻗치며 방법을 도모하기도했다. 이사람 저사람한테 물어보며 도움을 요청도 해봤다. 고군분투했던 이번 상황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부딪히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그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태어남과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각자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있듯 그저 각자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혹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부딪힘을 선택했고 그 과정과 결론은 꽤나 개같았지만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다. 늘 꾹 참고 살아오던 내가 할말을 다 뱉고 나온 것,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부당함을 모두에게 알린것. 그것만으로 나는 한층 성장했다.
나는 개같은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