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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Dec 10. 2020

이번 겨울에는 내 숨을 볼 수 없지만,

아, 겨울이 왔다. 알 수 있던 신호중 하나는 밖으로 나서면 찬 공기에 둘러쌓인 내 하얀 숨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 하고 찬 공기 속으로 숨을 내뱉으면 모락모락 하얗게 흩뿌려지는 입김. 그걸 보면 아, 입김이 나는걸 보니 겨울이 왔구나 했는데, 올 해에는 하얀 숨이 마스크 안에 갇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만하다. 당연했던 것들이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가슴 저리게 깨닫는다. 아, 그게 되게 필요한 거였구나 이게 되게 예쁜거였구나 한다. 그런 요즘이다.

그런데 또 그렇다. 내가 속해있던 세상 속에서 당연한 것들이 사라져가니 또 반대로 그렇게까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중요해지고 예뻐보인다. 나에게는 음악이 그렇다. 출퇴근길에 혹은 일을 할 때에 습관적으로 늘 듣던 것들만 듣던 음악들의 가사 하나하나가, 멜로디 한 구절 한 구절이 더 와닿는다. 마스크로 가려져 입이 보이질 않으니 노래를 흥얼거리기에 썩 좋다. 밖에 나가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못하게되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해오던 독서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이러다보니 삶에 있어서 한 지표가 세워진 기분이다. 음악과 책에는 돈을 아끼지말자. 한 줄기 지표같은 것이 만들어지니 이게 꽤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익숙하던 것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려는 몸부림같을 수도 있지만 몸부림이라기엔 꽤 소중하고 예쁘기까지하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아름다운 무언가들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우리들이 지금 이 고된 시간을 버티고 견뎌 꼭 되찾아야할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들어진 상황속에서 버티고 견뎌야한다면 우울하고 괴롭게 버티는 것 보다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 버텨야하는 순간을 조금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듯 하나 어찌돼었든 하얗게 새어나오던 입김이 그립다. 이렇듯 곁에 있어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아름다운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친구와 혹은 연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음식점에 가는 것. 누가누가 힘들게 살고있나 친구와 예쁜 카페에 가서 서로의 불행이 더 불행하다 침튀기며 말하기. 넓은 공원에 가서 마스크 없이 러닝하기. 연인과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러 밤새 술집에서 같이 술마셔주기. 동경하는 감독이 만든 멋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기 같은 것들. 숨쉬는 것 처럼 당연해서 미루던 것들이 아쉽고 그립다. 일상적인 당연함들이 언제쯤 다시 돌아올까.

짧지 않을 것을 안다. 그렇다고해서 우리들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요즘 모두가 갖고있는 바람일 것이다. 사계절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하얀 겨울, 이번 겨울은 내 숨을 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기다리겠다. 어느날 밤 문득 누군가가 떠오르듯,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우리모두 괜찮아질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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