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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Jan 03. 2021

실패를 시작해보려 한다.

요즘은 밤이 오는 게 썩 좋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잠이 오질 않는다. 주기적으로 불면증이 나타나는데 아마 잠이 안 와서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건 직접 경험해본 이가 아니면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이번 불면증은 조금 다르다. 더 큰 고통이다. 두 번째는 하루가 너무 짧다. 할 것들 하고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해 잠이 오질 않는다. 책도 더 봐야 하고 운동도 더 하고 싶고 보고 싶은 영화 드라마가 태산이다. 욕심이 잠을 이긴다.
사실 두 번째 이유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고 첫 번째 이유가 밤이 싫은 큰 이유다. 운동을 할 때에도,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멀쩡하던 가슴이 자려고 눕기만 하면 그 위에 누가 앉아있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숨도 잘 쉬어지질 않는다. 전쟁통에 병사들도 잠들 수 있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본 후로부터는 그 방법을 적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이 왔는데 요즘은 씨알도 먹히질 않는다. 일주일 정도를 줄곧 이르면 새벽 4시 정말 잠이 늦게 오는 날은 새벽 6시에 겨우 잠에 들어 한두 시간 후에 출근을 준비했다.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지던 불면이 계속되다 보니 원인을 생각하게 됐는데 결국 스트레스였다.  그것도 가족으로부터 온 스트레스. 


얼마 전 브런치에서 이런 글을 봤다. 우리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건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일 거라고. 봤던 글 속에 등장하는 ‘상처’의 의미와 내가 의미하는 ‘상처’의 의미는 달랐지만 크게 공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냥 안 보고 살면 되는 남들과는 다르게 죽을 때까지 늘 곁에 있어야 하는 가족이 주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크다. 그 상처가 흉터가 되어도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가족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무언가를 스스로 이뤄낼 수 없을 때 상처가 되는 거다. 해주고 싶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나의 상황에 대한 자책과 분노, 현실에 대한 미움이 모두 상처로 돌아온다. 속이 상하고 나에 대한 화가 가슴속에 가득하다.



 ‘정확한 수익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원 없이 효도할 정도로 벌고 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작사가 김이나에게 저작권료로 수익이 어느 정도로 발생하냐는 여러 패널들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정확한 수익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원 없이 효도할 정도로 벌고 있다.' 그녀의 말은 이번에 새로 100억짜리 건물을 샀다던 스타 A보다, 나랑 동갑인 어떤 가수가 ‘이제 돈은 그만 벌어도 된다’라고 했던 말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가슴에 꽂혔다. 언제 들은 지 기억도 안나는 그녀의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혀 도저히 빠지질 않는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하고 스스로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저 말을 들은 날 밤은 역시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가 부러워서. 원 없이 효도한다는 그 말이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워서.

어떤 누군가가 나를 보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원 없이 다 해주고 싶고, 그게 나의 삶에 있어서는 몸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큰 가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상처 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가 매일 밤 내 가슴을 짓누르고, 내 단잠을 달아나게 한다. 걱정한다고, 생각한다고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미련하다고 할 수도 있고 괜히 걱정을 사서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29살의 인간이고, 누군가의 동생이고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뿐인 그저 한 사람인 걸. 그래서 되지도 않는 생각들로 잠을 달아나게 하는 인간일 뿐인걸.

시작하고 실패하기. 그걸 해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있다. 더 열심히 살지 않으면, 더 힘들지 않으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 같다는 강박. 그래서 한번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탈탈 털어 그게 뭐든 해보기. 시작하고 실패하기. 그걸 해볼 것이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에게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 될 수 있음을. 나는 그렇다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김이나 작사가처럼, 혹은 그보다 더 원 없이 효도하며 살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행복하다 말할 수 있길. 잠을 이룰 수 없는 밤들이 연속되어도 행복하게 밤을 지새울 수 있길.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내 꿈의 가지 중 하나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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