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없는 평화

by 오롯하게

사랑을 하지 않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사랑이 나에게 얼마나 버거웠길래 지금이 이렇게나 만족스럽고 편한걸까.

누군가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일이란 생각보다 꽤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되기 마련이다. 애정한다는건 그 대상을 걱정하고 기다리고 행복하게 해줄 고민들을 하고 떠올리고, 떠올리며 웃거나 설레거나 울어야한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알게된다.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써야하는지 또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내가 그간 해왔던 ‘에너지소모’들을 쭉 살펴보면 늘 가슴 속에 돌덩이 같은걸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대를 이해해야했고 나를 상대에게 이해시켜야했고.
물론 사랑은 좋다. 사랑은 나를 기쁘고 행복하고 설레고 웃게하기도 하지만 불행과 슬픔과 불안과 걱정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모든게 다 사랑이다. 좋고 기쁜것만 사랑이라면 나는 지금 그것을 하지 못해 가슴 속이 공허하기만 할 것이다. 공허함 이라는 말이 나와서 방금 어떤 생각이 났는데, 누군가를 좋아할 때 느껴지는 가슴 벅참, 어떤 무게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고하여 가슴 속이 텅 빈것같다는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그게 좀 다르다. 가슴속에 묶어둔 것들이 없다보니 그 가벼움과 시원함이 나에게 편안함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러다보니 그 편안함으로 내가 하고싶었던 것들을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되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편안함이 평화 그 자체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마저 상대를 떠올리고 생각하게되니까.

아참. 나는 사랑 예찬론자였다.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텅 비어있는 것이고, 사랑을 하기위해 살고 혹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그러나 노래 가사에도 있듯, ‘너무 힘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는 아마 그간 꽤 힘든 사랑들의 연속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노래 가사처럼 사랑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저 어떤 감정의 움직임. 그런것들을 우리들은 흔히들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런 감정의 움직임들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찌돼었든 지친 감정소모들의 끝에 만난 이 평화는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사랑이 없이도 충분히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한다. 그러나 오늘 갑작스럽게 내린 눈처럼, 그렇게 언젠가 사랑이 찾아오겠지. 그때까지 나는 아무런 감정의 소모도 없는 이 평화의 공원에 조금 더 누워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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