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이 끝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by 오롯하게

이번 생이 끝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 나는 가족을 그렇다 생각한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끼겠지만 시간은 가면 갈수록 더 빠르게 흐른다. 2021이라는 숫자가 어색해 한참을 머뭇거리던 때가 지나 어느덧 2021년의 절반이 흘러간셈이다.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뒤로하고. 겉모습은 그러하지 않으나 커져가는 숫자에 놀란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나이가 그렇다. 이제는 엄마아빠의 나이는 몇년생인지를 떠올린 후 올해에 그 숫자를 빼서 계산하지 않고는 바로 머릿속에 떠올리기 어렵다. 늘 숫자를 외고있지 않기때문이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부모님이 돌이가시면 그걸로 이번 생에 나의 엄마아빠를 볼 수 있는 일은 없겠구나. 다음 생에도 또 부모와 자식의 연으로 만나 함께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누가 알겠는가. 일단 내가 다음생에 태어나게 될지 말지, 길가에 걷어차이는 작은 돌멩이같은 것으로 태어날지 아무도 모를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지금 엄마아빠와 함께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이 일분 일초가 너무나 아득히 애틋해졌다. 잘해야한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그렇다. 태어나 처음으로 짝꿍이 되어준 유치원 진달래반 친구, 포켓몬스터 빵을 나눠먹던 초등학교때의 친구, 뒤치락엎치락 꼭 붙어 함께 입시를 준비하던 미술학원 친구들, 밤새 술을 마셔 뒤집어진 속을 토할때 등을 두들겨준 대학친구,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던 아쉬웠던 짝사랑이라던가 내가 힘들때를 어찌 아는지 주기적으로 전화를 해주는 지인 그리고 하물며 지하철역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지갑을 주워주는 어떤 이 까지. 모두가 이번 생이 아니면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마주친 모든 인연이 어쩌면 닳도록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더 그렇다. 이번 생이 끝나면 다시는 못 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발을 동동 굴러도 소용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날의 밤이면 온통 눈물뿐인 꿈을 꾸기도 한다.


어쩌다보니 태어난 이 한번뿐인 생에 나의 가족으로 와준 가족들을 생각하면 고맙고 든든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그래서 미운 순간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생각하려한다. 그리고 그래야한다. 이번 생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듯, 다음 생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그러하다.

이번 생이 끝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 존재만으로도 나의 삶에 힘이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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