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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Oct 10. 2021

그 많던 영감은 누가 다 먹었을까

방에 불을 끄고 이불을 푹- 머리위로 뒤집어썼다. 문득 오늘 낮에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더니 나도 모르게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그 생각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만 굴려도 될 생각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휴대폰에 써내려간건 '글'때문이었다. 글로 쓰기에 좋은 소재라고 생각되어서.

뿐만 아니다. 코로나가 들이닥치기 전에는 극장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영화를 보다말고 뭔가 글로 쓸만한 소재가 문득 생각나면 머리를 숙여 무릎 사이에 깊게 낑겨넣고는 휴대폰에 드문드문 그 생각을 단어로 혹은 짧막한 문장으로 적어놨다. 그랬던 그 많던 영감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보통 인간에게는 평생동안 먹을 수 있는 양, 혹은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 같은 것들이 정해져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일반인에 비해 몸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은 나이가 들면 생기는 관절과 관련된 질병이 한 발 앞서 젊은 나이에 찾아온다. 또 많이 먹으면 위장이 평생동안 할 일을 몰아서 하기 때문에 그 또한 좋지 않다고 들었다. '소식해야 오래산다.' 뭐 이런.


아무튼 요점은, 그래서 요즘따라 통 글을 쓸만한 소재나 그를 위한 영감같은 것들이 싹 사라져버린게 아닌가 싶은거다. 뭔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다양해야 그에 맞는 생각들이 뒤따라오게된다는걸 안다. 활동반경이 줄어들고, 만나는 사람들이 전에 비해 줄어들어서 그런가 싶다가도, 시도때도 없이 글감을 적어내리던 예전을 생각하면 그 때에도 그렇게까지 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쓸만큼 다 써서 떠오르지 않는건가 싶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꽤 오랜시간 글을 쓰는게 끔찍하게 소중했던 나라 그 끈을 쉽사리 놓을 수 없었다. 이렇게 쉽게. 고작 이백개 정도의 글이 나의 평생에 할당되었다고 믿고싶지 않았다.


아마도 작고 큰 여러번의 기대에 뒤따라오던 실망, 좌절 그런것들의 연속이 나의 영감을 잡아먹은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돈 벌어 먹고사는 일 보다도 글을 쓰는 일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줬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왕이면 내가 쓴 글로 커피도 사마시고 밥도 사먹고, 그러고 싶었다. 여러번의 기회가 지나가고 뒤따라오는 작고 큰 실망들이 나를 조금씩 누를때마다 그렇게 땅으로 푹-푹 가라앉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세상을 바꿀만한 큰 글을 쓸 수는 없더라도, 큰 돈을 벌 정도의 유명한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그냥 이렇게 계속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마음먹고 쓰다보면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걸음을 멈출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어쩌다 적은 글이 누군가를 달래주거나 위로해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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