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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Aug 24. 2023

온 힘을 다해 이번 여름을 보냈는지, 나에게 물었다.

세차고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여름은 느즈막까지 뻗대다 이제야 그 존재를 감춘 듯하다. 어제는 처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기이기도 하며, 새벽녘에 이슬이 맺히는 날의 시작이다.


소란하게 울던 매미의 울음소리와 땅이 꺼질 듯 바닥에 내리 꽂힌 빗줄기들로 가득했던 이번 여름은 고되면서도 잔잔했다. 아마 바다 위 파도들도 오르락내리락 엎치고 덮치며 소란했겠지. 각자의 존재들을 세상에 알리러 온 듯 모두가 질러대는 소리에 땅은 물에 잠기기도 했고 작은 풀벌레소리는 들을 겨를도 없었다. 여직 나무에 붙어 맴맴 거리며 우는 매미들의 자존심은 이제 얼마 가지 않아 꼬리를 내리게 될 거다. 세상을 떠내려가게 하려는 듯 퍼붓던 비들도 이번 해에는 더 이상 만나지 않겠지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독하게 더웠던 이번 여름은 완전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맞이한 첫 번째 여름이기도 했다. 퇴사를 했고 직업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다. 사는 곳도 매일같이 하던 생각들과 내 안에서 들리던 무수히 많은 대화들도 모두 달라졌다. 아마도 사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 직장인으로 살아간 지 5년 차였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그러다가 그냥 죽는 건가, 싶은 생각들이 늘 머릿속에 가득했고 그 생각들이 나를 지금의 이곳으로 이끌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여름은 늘 피하고만 싶은 계절이었는데 그런 여름이 올해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새벽이면 지난주 지지난주와는 사뭇 다른, 알게 모르게 가을이 살짝 묻은 선선함이 나를 지나친다. 조금만 더 지나면 곧 새벽마다 찾아오는 쌀쌀함에 나의 강아지와 꼭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하겠지.


생각해 봤다. 이번 여름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덥혔던 것처럼 나 또한 온 힘을 다해 이번 여름을 보냈는가.

어떤 날은 물 흐르듯 모든 일들이 잘 흘러갔고, 또 어떤 날들은 늘 하던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본래 축구공 같던 무게가 꼭 투포환처럼 무겁게 느껴져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기도 했다. 어쩔 때는 일이 잘 풀리는 날보다도 불현듯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지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해가 쨍쨍한 날을 보내듯 축축하게 비가 오는 날을 보내고, 일이 잘 되는 날을 보내듯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을 보낼 수 있기를, 이번 여름에 유독 연습한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설레는 마음이 한가득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늘 내가 사랑하는 추운 겨울이 오겠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무더운 다음 여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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