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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노트

내려놓으라는 말.

by 오롯하게

어딜 가나 나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나의 강아지. 그런 나의 강아지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려놔’이다. 두꺼운 실로 꼬여져 있는 ‘뼈다귀’모양의 실타래 장난감을 가장 좋아하는 나의 강아지는 내가 청소기를 밀어도,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어도 뼈다귀를 던지라며 그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특히 내가 설거지를 할 때 던져주는 뼈다귀를 가장 좋아하는데, 오늘 설거지를 하다 문득, ‘내려놔’라고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아, 그게 나한테 하는 말이었구나, 그렇게나 많이 말한 이유가 내가 알아먹질 못해서였구나, 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싶을 수 있다. 다만 요근래 나 자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뭘까 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내려놓아야한다’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루고 싶고 갖고싶은게 많다보니 이것저것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어느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이렇게 하는게 맞나 싶은 의문점들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안다. 무작정 미친듯이 열심히만 하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많은 행동들을 하고있음에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뭔가 자꾸만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그건 내가 무언가 잘못된 흐름에 올라타있는 사실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책과 말들을 읽고 보고 듣고, 스스로 도출한 결론은 내가 그간 너무 많은 것들을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똑똑하다는 말이 맞을까, 아니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야겠다. 우주는 우리가 올바른 흐름을 탔는지 알아챌 수 있는 ‘직감’이라는 능력을 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온갖 미디어에서 하는 말들이나 고작 인터넷 뉴스를 보고 그것이 진리처럼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자마자 신뢰하면서 스스로의 직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 이상한 구멍으로 새어나갔다. 어찌돼었든 내가 나의 강아지에게 수도없이 하루에도 수십번 많으면 백번까지도 하는 ‘내려놔’라는 말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아마 이미 모든 사람들은 경험했을거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안달이 날 수록 그게 멀어지는 경험 말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간절하게 원하게 되면 단순히 ‘노력’만 하게 되는게 아니다. 그것을 갖지 못할까 안절부절, 부서지면 어쩌나 노심초사. 그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문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좋아져서 자꾸만 보고, 곁을 맴돌면 이상하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물도 모래알도 잡으려고 손을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모두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간다.

우주의 원리는 단 하나다. 꽃이 예쁘다고 꽃을 꺾으면 죽어버린다. 꽃이 예쁘면 꽃에게 필요한 물을 주고 해를 보게 해줘야하지, 그 꽃을 손에 움켜쥐고 있으면 아마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꽃은 시들고 말거다.

내가 나의 강아지에게 셀 수 없이 했던 ‘내려놔’라는 말이 온 우주가 나에게 알아들으라고 외치던 말인걸 알게 된 순간 깨달았다. 우주는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과 방법으로 우리에게 옳은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뇌는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임에도 사람들은 ‘이성적’ 혹은 ’논리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머리를 통한 계산적인 사고에만 의지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분명 당신이라는 배를 큰 파도에 침몰하지 않게 만들어줄 유일한 키는 당신의 심장, 당신의 가슴이 쥐고있어야 한다. 올바른 방향을 아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다. 그래서 늘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과 내가 나에게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모든 답은 이미 내 안에 있고, 그 해답들을 우리가 어떤식으로 발견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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