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나 좀 해볼까,

by 오롯하게

“며칠째지 그래서?”

“몰라 한 열흘 됐나.”

“미친놈, 안 답답하냐?”


집을 나가지 않은지 한…열흘쯤 된 것 같다.

맞나, 날짜개념도 그새 사라져서 열흘이 맞나 싶다.

참 우습다.

사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렇게 매일매일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주말만 기다리는 생활을 한 무수룩 세월이 억울하게

열흘만에 날짜개념이고 시간개념이고 자취를 감췄다.


“이대로 둬라. 나도 몇일인지 몇신지 모르고 좀 살아보자,”

“답답하면 말해. 밥 사줄테니까, 사람 걱정 시키지 말고.”


15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건, 그래. 충동적인 결정이 맞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어차피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그렇다면 세상에서 뿌리친 나도 잘 살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똑똑-

“누구세요"

‘소독 나왔습니다.’


오전시간에는 늘 회사에 있던터라,

오전에만 해주는 아파트 소독을 단 한번도 한 적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안녕하세요, 화장실이랑 베란다만 정기소독 하겠습니다.”

“네.”

내 집인데도 어디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어쩔줄 모르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여기 싸인 해주시면.”

“아, 예.”

“1702호는 제가 소독하면서 처음이네요. 바쁘셨나봐요. 수고하세요.”


늘 살아오던 삶의 문을 닫으면, 새로운 삶의 문이 열린다.

늘 보던 것들에서 멀어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집에 이사오고 5년만에 아파트 소독을 처음 받았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지난 15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된 기분이다.


“면도나 좀 해볼까.”


열흘만에 마주본 거울 속 덮수룩한 나의 모습이 새삼 새로워 피식 웃음이 난다.

뭐, 수염도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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