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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Sep 16. 2023

집밥의 향수

나는 왜 그토록 독립을 하고 싶었을까.

대학교때부터 지긋지긋하게 길었던 통학시간, 남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도 늘 가장 늦게 도착하던 집. 8시간의 근무를 하고 또 다시 한시간 반 가량이 걸려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그당시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거리. 그런 것들의 집합체였을거다. 

긴 출퇴근시간이라는 사실을 핑계로 하지 않았어도 되는 독립을 했다.


첫 집은 그야말로 한칸짜리 원룸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굉장히 열악한 컨디션이었음에도 그저 들뜬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 더이상 회사가 멀지 않았고, 남자친구와도 꽤 가까운 거리였다. 혼자서 살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그릇이나 작은 서큘레이터를 사는 일 따위에도 늘 마음이 들떴다.
그렇게 두달정도 지났을 무렵에 문득 서러움이 찾아왔다. 이제 앞으로는 엄마아빠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슬픔과 내가 독립을 해야겠다 선택했던 그 어처구니없이 가벼웠던 이유들이 사무치게 후회됐다. 퇴근 후 저녁과 곁들인 맥주에 취해 엉엉울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첫 집에서는 독립으로 느낀 설렘은 잠시였을뿐, 후회와 외로움만 가득했다.


2년 뒤 두번째 집으로 이사를 할 무렵에는 어느정도 혼자사는것이 적응이 된 후였다. 이제는 오로지 혼자만 있는 공간이 없으면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여서 본가로 가서도 몇일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먹는 시스템이 고장난거다. 아무리 엄마가 해주신 반찬을 싸들고와도 회사를 다니고 혼자서 집을 먹는 횟수가 많질 않으니 금방 곰팡이가 피거나 상하기 일수였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치우지 않아도 되고 간단하게 떼울 수 있는 빵이나 과자를 찾게됐고 자연스럽게 체중이 증가하자 연이어 되도 않는 다이어트를 하며 식습관이 더 망가지기 시작했다. 악순환이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나 세번째 집에서 살고있는 요즘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있다. 그 전에 살았던 작은 오피스텔이 아니라 가족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다보니,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아침밥을 먹는 유일한 주말이 오면 예전에 맡았던 집밥의 냄새가 창을 타고 우리집으로 들어온다는거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먹었던 생선 굽는 냄새, 비오는 날이면 늘 먹었던 김치부침개, 늘 냉장고에 있었던 멸치볶음을 만드는 냄새. 그런 것들.


처음에는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와 우리집까지 환기를 시켜야 해서 번거로움이 컸지만, 이제는 우리집으로 흘러들어오는 그런 익숙한 집밥의 냄새가 그립기도, 꽤 정겹기도 하다. 향수라면 향수다. 

집밥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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