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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0g의 말들

볕이 좋았던 날들, 잘 마른 빨래.

by 오롯하게

조금은 차가운 바람에 볕이 좋은 날이니, 볕이 좋았던 날들이 떠오른다.


아주 어려서부터 어리지 않게된 날들까지 일요일 아침이면 해가 들어오는 베란다 앞에앉아 나를 기다리던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이제 막 깨어난 잠에 다시 들듯하게 귀를 파주던 그 순간. 해가 비춰 점점 뜨끈해지는 뺨과 간지럽지만 시원한 귀. 빠짐없던 그 일요일들이 문득, 오늘의 볕에 떠오른다.


방금 다 말라 개킨 수건에 닦는 얼굴, 뽀송하게 마른 배게커버에 닿는 뺨.

그늘진 골목을 벗어나자 머리맡에 놓여진 따뜻한 햇빛.씻은지 일주일 된 나의 강아지에게 나는 꼬순내.


문득 떠오르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느껴지는건 하나다. 행복은 어쩌면 모든 시간들에 묻어있다는 것. 불행하다 느껴지는 순간들에도 그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온전히 살아있는 행복을 온 몸으로 껴안을 수 있다는 것.


산다는건 어쩌면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어찌보면 오만한 생각이 떠오른 볕이 따가운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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