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하게 Nov 03. 2023

나의 나무

지금의 나는 어떤 색을 띄고 있을까.

푸릇함을 드러내던 초록의 나무들, 그 머리 꼭대기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10대와 20대가 푸른 초록의 나무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색을 띄고 있을까. 완연히 붉진 못한 어스름한 주황쯤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더 붉게 물들어 갈색 어느 언저리쯤으로

물들어 있을까.


살랑이는 바람에 철없이 흔들리던 지난 초록의 시간들은 무성하게 설레이고 또 사무치게 아팠다. 불쑥불쑥 쏟아지던 한 여름의 소나기를 맞아내듯 세상을 떠밀 정도로 크게 울기도 했고, 내 정수리를 뜨겁게 달굴 정도로 열정적이던 햇빛. 그것처럼 뜨겁게 누군가를 애정하기도 했다. 뜨겁던 마음의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던게 날카롭게 갈려있던 칼날, 그것이었어도 주황과 갈색 어디쯤 물들어있는 나에게는 그 어떤것도 후회는 없다.


어느 해의 여름은 청량한 청춘영화의 주인공처럼 찬란하고 또 설익은 살구처럼 시었고, 처음으로 내어주었던 마음에 깊은 화살이 꽂혀 나를 후볐어도 버림받은 마음조차 뭉근하게 오래도록 나를 덥혔다.

또 어느 해의 여름은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장맛비처럼 오래동안 나를 울렸고, 그 지독한 울음의 한 귀퉁이로 새어들어온 의젓하고 슬픈 영혼은 반짝 열려있던 내 싱긋했던 마음을 굳세게 닫아버리기도 했다.

어느 해의 겨울은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고, 또 어느 해의 겨울은 그 누구라도 사랑하고싶은 마음에 얼어붙은 맨발로 무릂까지 쌓인 눈길을 걷고 또 걷기도 했다.


슥-슥 수줍은 소리를 내던 초록의 잎사귀들은 이제는 여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툭, 툭, 하고

큰 소리로 땅에 내려앉는다. 밟아도 소리없던 초록의 잎사귀들은 이제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형체도 없이 부서진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 모든 것들이 땅으로 또 공중으로 흩어져 언제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겠지.

지금은 주황과 갈색 그 어디쯤에 와있을 나도 그렇게 바스락거리다 부서지다 언젠가 형체도 없이

그렇게 땅으로 그리고 공중으로 돌아갈거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색을 띄고있을까.

완연히 붉진 못한 어스름한 주황쯤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더 붉게 물들어 갈색 어느 언저리쯤으로

물들어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나를 잊게되면서도 또 찾게 만드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