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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Dec 03. 2023

혼자서 고구마를 삶아 먹는 나이.

아마 30대를 지난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나의 글에 많은 공감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무슨 느낌일까. 늘 궁금했다. 분명 나의 엄마도, 아빠도, 길을 지나다니는 많은 분들에게도 나와 같은 10대 20대를 지났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그들의 20대는 어땠을까, 그들의 10대는

여느 10대들과 다름없이 엉망진창에 어리숙한 모습들이 설익은 살구마냥 풋풋했을까.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30대가 불쑥 발을 내민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야 우리가 벌써 서른이야' 친구들과 떠들면 꼭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시간은 25살 26살 그 언저리라고. 아마도 몸은 조금 늙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큼은 이런저런 경험과 실패와 행복들로 성숙해졌을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고.

그래서 나는 아직 스물다섯, 스물여섯 그즈음에 멈춰있다고.

그러다 그 해쯤 집을 나와 독립을 하기 시작했고 온전히 혼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그뿐, 언제든 엄마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했고, 그저 잠시 집을 비우고 '자취'를 하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 내가 정말 어른이 됐구나, 온전히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때가 왔구나를 체감한 건 은행에 서류들을 잔뜩 가져다내며 대출을 받던 때도, 혼자서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도 아니었다. 그 순간은 처음으로 소파를 샀을 때였다. 참 신기한 순간이었다. 처음 산 소파가 집으로 배송 오던 날, 그 순간 '아, 내가 정말 어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매었다. 그렇게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진 어느 날, 바로 오늘 아침 비슷한 감정이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별 순간도 아니었다. 관리비를 수두룩하게 내고 대출 이자를 내고, 훨씬 넓어진 아파트를 청소하는 일도 아니었다. 어제 길 가다 산 밤고구마를 깨끗하게 씻어 냄비에 물을 받아 고구마를 삶는 그 순간. 늘 엄마가 삶은 고구마를 주던 때가 머릿속을 스치며, 아. 이제는 고구마를 삶아 먹는 것도 나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정말 나는 이제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고구마를 삶아 먹는 나이.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

인생은 찰나고, 고작 지구라는 땅덩이 위에서 몇십 년을 머물다 사라질 것이지만,

그런 시간에 비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

나는 지금 그 삶의 1/3쯤, 그 어디쯔음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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