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한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신나는 노래보다는 조용하게, 조곤조곤 속삭이는듯한 노래를 선호하는 편이다.
퇴근 후 집을 갈 때에도, 약속 장소에 가는 짧은 순간들에도
음악을 듣는 일은 너무나 당연해졌다.
그러다 문득 어제저녁 퇴근길, 역에서 내려 집을 걸어가는데
선선한 바람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귀가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져서
이어폰을 빼고 걷기로 했다.
순간 들려오는 바깥소리가 그토록 반갑고 달콤할 수 없었다.
자동차가 도로를 지나는 소리, 사람들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
불어오는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심지어는
그 선선하고 달콤한 바람이 나에게 닿기까지의 소리마저.
너무나도 선명하고 자세하게 들려왔다.
그쯤 되고 나니 내 주변에 흐르던 세상의 소리가
마치 음악이 된 기분이랄까.
이렇듯 온통 다른 곳에 몰두되어있어 주변도 살피지 못했던 신경을
조금만 옆쪽으로 틀어보면
언제나 곁에 있었으나 느끼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원망했을 만큼이나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과의 연애가 끝나고
문득문득 밀려오는 외로움의 시간마저 지나고 나면
지루하고 먹먹하기만 하다 생각했던 나의 삶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멀쩡해서 싫증 났던 그 순간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행복하고 멋지고 예쁜 시간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새삼 자주 느낀다.
닥쳐있는 순간에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리 느껴지는 일들의 옆쪽에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나의 삶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신경 써준다면
훨씬 더 부드럽고 포근한 시간과 공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을
기꺼이 약속할 수 있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