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기조차 두려웠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출근 준비시간에도 땀이 흐르지 않는
가을이 오고 있다.
출근길, 역을 걸어가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해를 가리느라 오른팔을 올리며 걷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선선한 바람에 더해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햇빛이
꽤 따스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지하철역 출구를 올라가
지상을 만나는 순간이 정말이지 두려웠는데
이제는 출구를 찾아나가는 역사 내로 불어오는 바깥바람이
마냥 반갑고 기분 좋기만 하다.
숨만 쉬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땀이 났던 더위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은 시원한 바람으로 메워져 있다.
간사하다.
간사하고 감사하다.
지독했던 무더위가 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왔어야 할 태풍이 지나버린 자리에
물 반 공기반, 무겁고 습했던 공기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짊어지기 힘들던 공기들만 남았던 그 여름이
벌써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 더웠던 여름날처럼
이제는 지나간 그가 없는 나의 모습이 상상도 되지 않던 그 순간들
그가 없는 나의 모습만 떠올리면 나를 덮쳐오던 불안감에
달달달. 부산스럽게 떨던 다리와 뜯겨나가는 손톱들의 희생.
그와 함께하던 것들을 오롯이 나 홀로 하게 되는 모습을 그리며
쉴 새 없이 땅을 두드리던 그 뜨겁고 애틋했던 눈물들이
이제는 과연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불안해하고 안타까워했는지
스스로가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한껏.
그때의 나보다 한껏.
아름답고 행복해졌다.
이제는 선선한 저녁이 기다려진다.
저녁이 가고 밤이 깊어가도 그칠 줄 모르던 더위의 고백이
이제야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듯.
침대가 기대고 있는 왼쪽 벽의 창을 활짝 열면
이불을 살짝 끌어올릴 만큼
딱 그만큼의 기분 좋은 바람이 나를 감싸 안는다.
기분이 좋다.
오늘 저녁
내방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그 창으로 보이는 둥그렇고 노란 달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한껏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