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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Sep 23. 2016

가끔은 욕심이 포기를 부른다

그래도 한량한 나보단 욕심쟁이가 좋아

가끔은 욕심이 포기를 부른다.

도대체 하고 싶은 게 많은 건지 귀찮은 게 많은 건지 헷갈릴 정도로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안 한다. 그게 문제다. 보통 남는 주말에 영화를 다운로드하여본다. 근데 이게 직업도 아닌 것이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에 대해 병이 걸린 건지, 영화를 보기만 하면 뭘 적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내가 공감하는 대사나 상황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상황에 대사가 보이면 급한 대로 옆에 있는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영화가 지나간다. 그러면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화살표 키보드로 영화를 돌린다. 다시 본다. 이게 무슨 영화를 보는 거란 말인가. 수능 공부를 하려 고등학교 때 봤던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과 어느 부분이 다른지 헷갈릴 정도이다. 결국 이렇게 보기 시작한 영화는 몇 주가 걸려야 엔딩을 만난다. 나중에 영화를 글로 정리하기 위해 그렇게 영화의 중간중간을 잘라먹고 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다. 두 번. 세 번. 그래서 이상하지만 하나의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게 나에게는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것 봐라. 욕심이 포기를 불러온다는 말을 전하려다 또 영화 이야기로 길이 새어버렸다. 꼭 나쁘지만은 않지만 종종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산만한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고. 아무튼 삼천포로 빠지는 건 거의 내 특기다.


아무튼 삼천포로 빠지는 건 거의 내 특기다.


근데 또 이상하게 책의 경우는 다르다. 책을 읽다가도 매한가지로 이 생각 저 생각. 삼천포로 빠지기는 하지만 좋은 구절을 메모에 적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그 구절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 떠올리다 보면 책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영화보다는 책을 자주 찾는 편이다. 또 영화는 끊어서 보면, 그 흐름이 끊겨서 진액이 다 날아가는 느낌인데 책은 끊어서 보면 오히려 보기 시작할 때의 집중도 덕분인지 훨씬 더 책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영화 대사는 영화 속 상황과 맞물려야 하지만, 책 속의 좋은 구절은 내가 처한 현실과 맞물린다. 그래서인지 영화보다는 책이 조금 더 고맙기도 하다. 


영화에서 책으로 또 길이 샜다. 어쨌든 삼천포로 빠지는 건 정말이지 특기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감을 하다가 중간중간 기사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그 빈 시간이 생기면. 제일 먼저 휴대폰을 찾는다. 거의 병이다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잠금 해제한 휴대폰으로 각종 sns를 휘집어놓다가 여기. 브런치에 들어온다. 눈이 가는 글들을 여러 편 읽고 나면 '이들은 이토록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데, 나는 뭘 하고 있지'하며 글을 쓸 소재를 찾기 시작한다. 메모지를 찾다가 문득 읽다만 책을 집어 들고는 '맞아 이것도 읽다말았는데'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책을 몇 장쯤 넘기다 보면 '아참 글을 쓰려고 했는데'하며 가장 필기감이 좋은 펜으로 노트에 잉크를 묻히기 시작한다. 어쩌고 저쩌고 이 생각 저 생각을 담아 글을 쓰고 나면, 그에 맞는 사진을 찾으려 또다시 휴대폰을 찾는다. 그러다 잠금해제만 되고 나면 사진 찾을 생각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온갖 sns들을 종횡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또 문득 '아~ 이 친구, 뭐하고 지내나 모르겠네' 오지랖이 도져 연락을 던진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건지... 하하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건지... 하하

뭐 대충 이런 레퍼토리가 반복된다. 이것저것 다 하려 들다가 결국 다 하긴 한다만 한 번에 집중해서 끝내 지를 못한다. 가끔은 이것저것 다 한 번에 하려다 한숨과 함께 모든 걸 한 번에 뒤로 밀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밀려오는 한심함이란.. 다행인 건 이 한심 함조 차 얼마 안 가 잊어버린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종종 파워 집중이 오는데, 이럴 때 엄청난 집중력으로 엉덩이에 땀이 찰 때까지 무언가에 몰두해 작업을 끝내 놓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시원할 수가 없다. 차근차근 우선순위를 정해 일을 하는 일이 나에게 벅찬 건지, 한 번에 여러 개의 일들을 하는 체질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가끔은 욕심이 포기를 부른다. 그래도 욕심 없이 한량한 나보다는 이것저것 다 하려 들다 못하는 내가 조금은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욕심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연습을 한다면 좀 나아질랑가? 그건 일단 좀 이따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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