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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Sep 27. 2016

자격지심인지 뭔지 그거

언제나 그랬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쉬워 보였고, 남들이 하는 일은 넘지못할 너무나도 큰 산이었다. 이게 단순히 자존감의 문제일까?


내가 겪어온 일들 중 많이 모자라거나 부족해 보이는 일들은 없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미대에 진학도 했다. 늘 투덜투덜 '내가 그걸 어떻게 해'를 입에 달고 살면서 해갔던 과제들도 언제나 A혹은 B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절대 하지 못할 것 같던 졸업전시도 무난히 그리고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잘 마쳤다. 그래도 언제나 생각했다. '솔직히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솔직히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남들이 해낸 것들은 언제가 내가 넘어설 수 없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을 이때 쓰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너무나도 대단해 보였다. 감히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처럼. 그래서 항상 속이 상한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음에도, 그 결과물이 바로 눈 앞에 떵떵거리며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안 가 '이 정도는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하며 올라가려던 어깨는 바삐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다 문득 주변의 친구가, 동기가 혹은 그냥 아는 지인 누군가의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면 그것이 과연 대단한 것인지, 별 것 아닌지를 떠나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그를 이뤄낸 누군가가 너무나도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가 해낸 일은 나에게 어려움으로 큰 산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쯤 되면 병이라 생각됐다. 내가 한 일들도 대단한 일일 수 있는데, 왜 이딴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인지.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을 먹기 전에 느끼는 그 설렘과 기대감과 두려움. 크게만 느껴지는 이런 감정들은 막상 그 음식이 입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면 그만이다.

대학시절 과제를 받기 전. 그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미대이다 보니 OT 때부터 과제를 받고 생각하기 바빴는데, 과제의 설명을 뱉어내는 교수님들의 입이 가장 얄밉고 무서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도 그뿐이다. 막상 과제를 고민하고 틀을 잡아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만 지난다면, 작업하는 순간의 고민과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소소한 두려움들을 나는 이제 떨쳐내고 싶다. 내가 이뤄낸 일들이 크던 작던 너무 작아 나밖에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잘했다, 멋지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며 올라갈 듯 말 듯 했던 그 어깨들을 하늘 높이 주-욱 끌어올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이뤄낸 일들을 마주치면 '기꺼이 나도 할 수 있지' 뻔뻔한듯한 당당함을 가지고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


아-자격지심인지 자존감의 문제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참, 걸리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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