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는 살아있고 싶다.

우리네 청춘이 너무 슬프다-2

by 오롯하게

-수빈씨, 우리 커피 마실까?

'네' 답하고 커피 주문을 받는다. 어려운 취업시대에 운 좋게, 아니 운이 좋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취업을 해 사회 길에 올라섰다.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야근은 꼬박꼬박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듯 매주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수당 없는 야근을 시키지 않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가 이상하다 여겨질 정도였고(아 물론 나 또한 수당은 없다) 그나마 새벽 2-3시에 퇴근을 하면 집에 타고 가는 택시비를 주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동기들도 무난했다. 다들 점잖고 그 흔한 지각조차 하지 않는다. 정규직으로 들어와서 큰 실수를 만들지 않는 이상 쉽게 잘리지도 않고, 4대 보험에 연금도 가입돼있다. 그래도 사회가 계속해서 뿜어왔던 암묵적인 위기들과 절망의 연기가 어느새 우리들 깊숙이에 들어와 버린 모양새였다. 불안했다.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전공따라 들어와서인지 학교서 주섬주섬 익혔던 것들이 아예 도움이 안 되지는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수입이 생긴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4번이나 받은 학자금 대출금과 자취하느라 생긴 생활비를 메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짐을 덜어놓은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적금도 들었다. 조금씩이라도 모아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편안하지만 언제나 불안했다.


한 달 하고 일주일쯤이 지났다. 나를 포함한 동기 셋이 점심을 먹고 잠깐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너무 절망적이었다. 조금 슬퍼졌달까.

나보다 4살이나 많은데도 신입으로 들어온 지연언니가 입을 뗐다.

-나는 솔직히 여기가 내 성지 같아. 여기저기 너무 치이면서 부모님 눈칫밥만 얻어먹고 나이만 들다 보니까 월급이고 나발이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올 데가 있다는 게 겁나 좋기만해. 솔직히 뭐.. 잘리지만 않으면 그냥 좀 다니다 결혼하지 뭐.

그다음으로 나보다 2살 많은 연수 언니였다.

-뭐... 오갈 데 없는 건 매한가진데요. 그래도 여기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야근수당이랑 식비까지 챙겨주면 좋은데.. 뭐 그거 안 주면서 안 뽑아주는데도 널렸는데 적어도 130이라도 꼬박꼬박 주니까요. 갑자기 망하거나 그러진 않겠져?


내 월급은 130이다. 아 물론 세금 다 떼고.

나름대로 미술대학 출신이라 등록금을 한 학기에 500씩 내고 4년을 다녔는데 고작 한 달에 130을 받는 게 그 대가다. 그나마도 정규직 시켜줬으니 감사하게 여겨라 심보다. 식비도 없다. 수당도 없다. 이쯤 되니 내가 회사원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아리까리해지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첫 직장생활이라 생각이 들어 설레는감도 있고, 나에게 무언가가 맡겨진다는 일이 생긴다는 게 두려우면서 재밌기도 했다. 근데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고 나서 돌아보니 이건 뭐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죄다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얻은걸 써먹을 데가 눈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고정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이틀의 야근을 제외하고도 야금야금 야근은 늘어만 갔다. 아 물론 수당 없이. 이래저래 130에 적금을 50만 원 들고나면 남는도는 80만 원. 월세 45만 원을 제하고 나면 35만 원인데 여기에서 휴대폰비 8만 원 교통비 10만 원 가끔가다 사 먹는 2000원짜리 커피들 몇 잔을 빼고 나면 끽해야 13만 원 언저리인데, 이 돈으로 매달 점심값까지 충당하려 하면 거의 거지꼴이다. 그래서 점심은 거의 혼자 먹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사 먹는 삼각김밥이나 사발면이 주로 내 점심식사다. -수빈 씨는 왜 안 먹어? 할 때마다 대야할 핑계들을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기 전에 그냥 눈가에 주름이 몇 개 가게 웃으면 대충 그들끼리 먹으러 나가곤 한다. 근데 이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단지 수당 없고 식비 없는 월급 130 때문이 아니다. 학자금 대출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고, 자는 곳도 마련하고 먹는 것도 챙길 수 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잖아. 원래 하고싶던 일들을 가슴 속에 꼭꼭 눌러둔채, 먹고사는 것 부터 챙기려 했던 내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정말로 미안해졌다. 그래서 하고싶은 일을 은근하게 끌어올리면 속히 어른이라 칭하는 사회의 한 계급들은 이런 말들을 한다. '현실과 이상을 착각하지 마라'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아'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마냥 죽은 사람처럼 혹은 그냥 한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이기만 할 노릇은 그만두고 싶어 졌다. 그리 어렵다는 취업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했다고 해서,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난무하는 이 어두운 사회에서 정규직으로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리 행복하지 않다. 살아있음조차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건 마른하늘에 우물을 파는 것과 매한가지라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다. 취업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을 먼저 챙기고 싶어졌다. 내가 뭘 원하는지, 하고싶은것이 있다면 도전하라. 실패해도 상관없다. 한번 사는 인생 그까짓거 몇년 좀 헤매면 어떤가 싶은 생각이 몇달내내 눈을 뜨나 감으나 나를 괴롭혀왔다. 내 안에서 외치는 것 같았다. '우리 좀 사람답게 살자. 순간순간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자.'


그래도 정규직이 어디냐며 말리는 지연언니와 조금 더 생각해보라는 연수 언니를 뒤로하고 나는 이달부로 회사를 그만둔다. 후회는 없다. 절망도 슬픔도 없다. 불안하게 살고싶지 않았다.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들을 하며 식대도 야근수당도 없이 고작 130만 원을 받으며 일했던 순간들보다 새로운 일을 찾으려는 설렘과 걱정이 난무하는 지금에서야 나는 보다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살아있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1-그냥 그러려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