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청춘이 너무 슬프다-3
'이것만 다 하면 바로 자야겠다' 자칫 잘못해 중간고사 때처럼 밤이라도 새우다가 또 시험에 늦을 수 있다. 까먹고 못 냈던 과제 탓에 시험이라도 만점을 받아야 겨우 C. C를 받으려 샜던 밤이 나에게 가져다준 건 늦잠이었다. 기말에도 같은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 불행인지. 내일이 두 번째로 시험을 보는 날이다. 이것만 하고 자야지.
사실 벌써 학교를 졸업해도 시원찮을 나이다. 내 나이가 27인데 군대 2년에 학생 때 아니면 못 할 것 같아 도전했던 교환학생만 2번. 거기다 제대 후 복학한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무턱대로 했던 휴학 1년까지 더하면 학교에 있은지 올해로 벌써 7년 차다. 이번 학기만 잘 마치면 바로 졸업이다. 학교를 떠나야 한다. 졸업하기에 충분한 학점을 이수받아 정당하게 졸업장을 받는 것인데도, 이게 참 떠밀려 나가는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들 몇 가지는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 뭐 해 먹고살지' 결국 이건데, 틈틈이 취업박람회나 취업특강을 다니고, 친구들 따라 동기들 따라 자기소개서 쓰는 연습을 하거나 기업별로 나열된 인적성 문제집을 힐긋거리며 훑어봐도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사회에 나가기 무서운 게 아니라 왜 내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그 목적이나 이유를 찾는 과정들에서 느껴지는 자괴감이 꽤 크다. 근데 그걸 버티는 게 점점 버겁게 느껴진다. 회사에 들어가려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안쓰러운 게 아니라 답답하다. 그들이 잠을 줄이고 편의점 음식들을 먹으며 들어가려는 그곳에 '들어가려' 이유를 과연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리 열심히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취업을 해도, 다들 속 마음에 품고 있는 목소리는 결코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은 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 나가는 것을 떠밀린다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다.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다. 이 사회가 이 나라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고민할 틈을 주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리나 SNS에 팽배하고 있는 글들 중에는 어이없고 암울한 기사들만 넘쳐난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학원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아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를 시작해서 방과 후 모든 학원을 마치고 10시가 넘어야 귀가를 한댄다.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것이 재밌고 더 공부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시기에 아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학교를 다니고 학원에서 배운 것으로 좋은 성적을 얻으려 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남들 하니까 해야 한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고 공부를 하고 또 좋은 대학교를 가려 밤을 새워 공부를 한다. 좋은 대학교에 가야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다는 말 하나에 또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문제집만 보고 있다. 나도 그랬다. 좋은 대학교에 가면 되겠지, 대기업에 취직하면 되겠지. 막연하게만 흘러갈 줄 알던 단순했던 내 머릿속에 나의 인생은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혀, 지금 이렇게 멈춰있다. '왜 기업에 가야 하나' 생각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인적성 공부를 해야 한다. 차라리 '나라를 지킨다'는 목적이라도 분명했던 군대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몸은 힘들었어도 이유가 있었던 그 군대라는 집단이 지금 이렇게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을만치 어두운 현실보다 훨씬 밝다. 돈만 내면 학기 유예야 할 수 있다. 근데 유예하면? 무슨 답이 나오나? 그것도 아니다. 그저 떠밀려나가 첫 발을 디딜 그 순간이 무서워 학교라는 틀 안에 숨어있는 꼴이다. 기껏해야 영어학원을 다니거나 자격증을 딸 것이 분명하다. 집에 있는 게 눈치가 보여 슬금슬금 집 주변 카페로 나와 자소서를 끄적일 테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빚지기 싫어 알바도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6개월이고 1년을 보낼 것이다.
항상 답답했다. 술자리에서 얘기하다 보면 다들 하나같이 나와 비슷한 생각인데 어찌 이 사회는 도무지 바뀔 생각조차 없는지.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군대를 어찌하여 '이 사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 것인지. 속에 그득한 그 수많은 외침들은 도무지 수면 위로 떠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직도 답답하다. 지금도 속이 미어진다. 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사회는 나이를 불문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경험하고 있는데도 나아질 기미는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지금 당장 내일 볼 기말고사를 공부해야 한다. C는 면해야 학점 3.5를 가까스로 넘는다. 그래야 어디든 원서라도 들이밀 수 있다. 그래야 먹고 산다. 떠밀려나갈 사회에 대한 준비는 지금으로써 이것이 최선이다. 밤샘 공부에 내일마저 늦잠을 자게 된다면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