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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Nov 01. 2016

어떤 모습의 당신을 가장 사랑하나요

내가 사랑하는 나는 누굴까

비가 내린다.

포근한 공기에 기대던 머리칼에 촉촉한 이슬이 맺혀 부딪히는 바람에 인사를 건넨다.

내리는 비는 좋지도 밉지도 않다. 땅바닥에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들과 함께 떠밀려온 서늘한 바람이 시원한 공기를 내 속으로 스며 정신이 맑아온다. 평소 같았으면 저 멀직이에서 들려오는 내 발소리에 파다닥- 자리를 떠났을 참새들도 오늘은 자작한 빗소리에 내 발소리가 묻혔는지 한참이나 가까워지고 나서야 파다닥 자리를 떠난다. 사실 우산을 쓸 만큼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는다. 토독- 톡, 토옥 간간이 들려오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남들 눈치 안 보고 우산을 접는다. 기분 좋게 정수리를 토닥이는 빗방울들이 시원함을 전해온다. 간혹 가다 귀 위쪽의 머리에 안착한 빗방울은 또로로 굴러 마치 땀을 흘리는듯한 모습을 연출해주기도 한다.


오로지 내 안의 소리들에 집중하여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싶은 대로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안의 소리들에 집중하여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내 목소리를 내어본 게. 언제부터였을까 궁금해진다. 내일 해야 할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다음 달에 챙겨야 할 친구의 결혼선물을 생각하지 않고 애인과의 다툼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오로지 지금 내 옆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인사를 받으며 이렇게 걸을 수 있었을까. 가야 할 곳도 생각하지 않고 멈춰야 할 이유도 생각하지 않으며 이렇게. 이렇게.


빗소리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니 작은 커피집 앞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 커피 내리는 향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딸랑' 방울소리에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으니 온몸을 감싸는 커피 향에 금세 몸이 노곤해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추운 겨울에도 항상 아이스만 고집하던 나였는데, 우산을 접고 꽤 걸어오다 보니 자연스레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주문을 했나 보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머리 위에 내려앉은 빗방울들을 탈탈 털고 차가워진 손을 맞잡았다. '딸랑-' 비 오는 날은 카페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빗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듯, 모두 각자가 할 거리를 혹은 생각할 거리들을 잔뜩 지고 와서 사부작사부작 그들만의 일들을 해낸다.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끄적이는 사람,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 커피를 마시다 엎드려 잠이 든 사람까지 제각각으로 모두들 할 일들을 한다. 굳이 뭔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만이 '할 일'이라는 명찰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거나, 복잡한 일과를 멍 때리는 것으로 순화시키는 것들도 충분히 각자가 '할 일'들이다. 자리로 커피를 가져다준 종업원은 비를 꽤나 좋아하는 듯 보였다. 커피가루가 여기저기 묻은 앞치마도, 흘러내려 오른쪽 눈을 살짝 가린 머리칼에도 신경 쓰지 않고 행복해 보일듯한 미소가 묻어있다. 그래서인지 향긋했던 커피 향이 좀 더 포근하게 느껴져 온다. 문득 처음 커피 원두에 물을 쏟아 커피 향을 맛봤을 누군가가 얼마나 황홀한 기분이었을지마저 상상하게 된다. 조금은 부러워하며.


하고싶은대로, 생각하고싶은대로, 그저 하고싶은 그대로


아, 어떤 순간의 내가 가장 사랑스러웠을까
 

커피 향을 맡으며 행복해진 나를 느끼다 문득. 나는 어떤 모습의 나를 가장 사랑하는가. 무얼 하고 있을 때, 어떤 상태일 때의 나의 모습과 사랑에 빠지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잡다한 생각들을 멈추고 멍하니 길을 걸을 때 나는 꽤나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런 모습의 나를 느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런 모습의 나를 뿌듯해하곤 했다. 써온 글의 마지막 문장에 나의 온 힘을 담아 마침표를 찍을 때. 그때의 나는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지, 그 순간들을 살아있는 시간 동안은 느끼며 영위하고 싶은 삶.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순간의 나와 사랑에 빠지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느지막한 오전에 몇 줄기 해가 들어오는 침대 위에 나의 반려견이 내 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 행복하나 그 순간의 나를 사랑하진 않는다. 반려견에 대한 사랑을 가득 느낄 뿐.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시간들을 훑고 하나하나 꼼꼼히 핥아봐도 어떤 순간의 내가 가장 사랑스러웠는가에 관한 답은 찾아내기 힘들다. 아, 어떤 순간의 내가 가장 사랑스러웠을까.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던 순간은 없었던 것일까. 정말이지 궁금하다. 어떤 모습의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먼저 알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의 나를 가장 먼저 앞서 알고 싶다. 곧 알게 되겠지,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의 나를 만날 날을 고대하며 마시는 오늘의 따뜻한 커피 한잔도 너무나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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