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가방

혀 끝에서 오는 악랄함

영화 <더 헌트>

by 오롯하게

말은 무섭다. 그리고 판단은 무거워야한다.
말은 정말 천천히 부드럽게 스며들어 가장 잔인하게, 소리없이 누군가를 밟아 죽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많이 느낀것은 '말'의 보이지 않는 힘. '말'은 정말 무섭고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말은 뱉은이의 작은 혀와 입을 떠나는 순간, 뱉은이의 마음과 생각따위는 훌훌 털어버린채 공중으로 흩어진다. 공중에 떠다니는 말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하는것과 같이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응어리진채 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결코 뱉은이의 마음이나 생각따위는 중요하지 않게되어버린다. 결국 뱉어진 말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어린아이의 작은 분노로 내뱉은 어이없는 거짓말은 한 어른의 인생을 무참하게 또 거의 완벽한 잔인함으로 뭉게버렸다. 영화를 보는내내 작은아이 클라라에게 극도의 분노를 느꼈고, 주인공 루카스에게는 나의 온 힘을 다해 거짓말에 둘러쌓여져있는 루카스가 느끼고있을 답답함을 함께하려고 애썼다.

이 영화는 '말'의 존재에 대한 부분과 함께, 주변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렸을적부터 함께 해왔고,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다 알고있었던 존재였음에도, 그간의 마음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듯, 정말 작은 말 한마디에 온 마음을 다 했던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돌아서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물증도 없이 그저 작은 소녀의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세워 밀어버린채, 벼락 끝을 잡고있는 손가락조차도 허락되게하지 않았던 잔인한 인간들은, 대롱대롱 벼락 끝에 매달린 루카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었다. 무서웠지만 멀게만은 느껴지지않는 느낌에 씁쓸한 마음이었다.


진실은 밝혀진다고 했고, 밝혀진듯 했고, 모두들 원래대로 돌아온 듯 했지만 아니었다. 그 작은아이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작은 거짓말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올가미에 옭아맨듯 벗어날 수 없는 그물망에 묶어놓고 계속해서 감시당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 인간관계 그리고 두 번째로는 말 이었다. 각자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의미의 말을 할 때에도 이렇게 저렇게. 그 사람에게 맞춰가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조금 피곤하고 번거롭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게 편하기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어렵고 무서운 '말'이라는 존재는 그 어떤 살상무기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고 악랄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 '더 헌트'를 통해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기억하자. 말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을 품고있음을.
그리고 영화 '더 헌트'는 말한다.
인생은 말 한마디로도 뒤바뀔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며, 말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강한 존재임을.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더 헌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대들은 사랑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