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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가방

그대들은 사랑을 아는가

영화 <킬 유어 달링>

by 오롯하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은 고통스럽고 자극적이고 슬픈경험들속에서 탄생한다.

마치 그리스신화 속 아들 크로노스가잘라버린 아버지 우로노스의 고환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처럼.

영화 ‘킬 유어 달링’은 실제인물인 루시엔 카, 앨런 긴스버그, 잭 케루악 그리고 데이빗 캐머러를 이야기한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에는실화인줄도 모르고 캐릭터들의 완성도나 영화의 연출, 영상미에대해 감탄했었다. 그들은 실존인물들이었다. 이 영화가 담고있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충분하게 말하고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빙자한 많은 감정들이 설쳐대고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되고,사랑인 줄 알았던 그 감정은 집착이라는 찌꺼기만 남은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며 상대를 괴롭히고있었고, 종종 뉴스에 나오는 데이트폭력,얼토당토않는 살인사건들과 폭력사건들은 ‘사랑’이라는 말도 안되는 집을 지은채 그 안에 은신하고있었다. 잘못된 감정을 사랑으로 속이는자와 사랑인줄 모르고 그를 이용하는자. 이 영화는 또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루시엔 카의 어린시절을 채워줬던 것은, 같은 보이스카웃의 리더였던 데이빗 캐머러. 그는 점점 루시엔에게 과도한 애정을 품었고,스스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루시엔에게 옆에 있어줄 것을 요구했다. 루시엔은 이를 집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루시엔은 데이빗에 대한 자신의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런 자신을 루시엔은 알지 못했다.
루시엔은 데이빗으로부터 배워온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던 앨런 긴스버그에게 오용하였고, 앨런은 그런 루시엔을 지켜주고 싶었을뿐이다. 앨런은 또 다른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루시엔에게 건네고 있었다.

루시엔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고 찾아다녔고, 루시엔을 연기한 데인 드한의 눈은 러닝타임 내내 자유와 고통과 반항과 억압으로 아이러니하게뭉쳐있었다. New Vision(신환상)이라는 이름으로, 갇혀있는 문학들을 파헤치며 다녔고, 그 속에서 사랑을 갈구했다. 속박된 삶에 갇혀있던앨런은 사랑하는 루시엔을 위해 이런 시를 썼다.

눈을 떠라, 여긴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Be careful, your not in wonderland.
네 영혼에서 자란 광기가 들린다.
I’ve heard the strange madness long grown in your soul.
허나 네 무지가 다행이다.
But you are fourtunate in your ignorance.
네 고립또한 그러하다.
In your isolation.
고통받는자여
You who have suffered

숨겨진 사랑을 찾는자여

Findwhere love hides
베풀고, 나누며, 잃어라
Give, Share, Lose

피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
Lest we die unbloomed



영화 ‘킬 유어 달링’은 문학에 대한 고뇌와 슬픔과 절망을 주인공들의 ‘사랑’을 통해 절절하지만 담담하게 보여준다. 루시엔(데인 드한)의 사랑을받으려고 밤낮할것없이 글을 쓰는 앨런 긴스버그(다니엘 래드클리프)를 보고있자면 미친사람으로 오인하기 딱이다. 루시엔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위해서,콜롬비아 대학에 들어가기전까지 글과 책밖에 모르던 앨런은 숱한 마약과 알콜, 수 많은 자위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자극적인 물질들을 제공하며 자신의속 깊은 본능에 위치한 ‘something’을 수면위로 올리려한다. 다시 한번 말하고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은 고통스럽고 자극적이고 슬픈경험들속에서 탄생한다.



루시엔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방식은 달랐다. 하지만 다르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옆에 붙잡아두려했던 데이빗과 인정을 받기위해 자신 스스로에게 고통을줬던 앨런. 그리고 사랑인줄도 모르고 스스로와 상대방을 아프게만 하려했던 루시엔. 이보다 큰 절망과 슬픔이 또 어디있을까. 하지만 각자의 위치를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 데이빗은 앨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 아이가 필요로하지만 원하진 않는 사람들이야. 가슴아프지?” 사랑하는이에게 칼로 온 몸을 찢기는 고통을 받고나서도 그를 쳐다보는 데이빗의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래.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의눈빛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사랑을 사랑인줄 모르고, 그 사랑을 날카로운 여러번의 고통으로 선사한 루시엔의 울부짖음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나는 너를 떠날 수 없어, 그러니 네가 나를 떠나줘야해’


루시엔을 사랑하고 루시엔을 지켜보고있던 앨런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사랑했던 것들은 영원히 네 일부가 되어버려 만약 네가 놓으려 한다면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네게 다시 돌아올거야. 너란 사람을 이루는 부분이된다고. 아니면 너를 파괴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앨런은 이렇게 말한다.
‘또 다른 사랑이 세상을 뒤흔든다. 이 순환은 무너졌다.
죽음 뒤엔 또 다른 탄생이 있다. 모든 연인과 슬픈사랑 체념, 나는 시인이다.’
나는 아직도 앨런의 영화 속 마지막 시가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데이빗을 죽인 루시엔을 위한 것이었는지, 무엇이 사랑인지 모른 채 사랑을 빙자한숱한 감정들이 설쳐대고있는 이 안타까운 세상을 위해서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은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싶다.

그대들은 사랑을 아는가.
Do you know what is love.
만약 사랑을 안다면 ,
If you knew love,
베풀고 나누고 잃어라.
Give, Share, Lose.
피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
Lest we die unbloomed.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킬 유어 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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