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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Jan 31. 2017

첫 인상과 마지막 그의 모습

가끔은 무작정 던진 서두에 마무리를 짓는 것이 곤욕일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글을 며칠간 놓고 있으면,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긴 듯한데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써져서 쓰던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쓴다는게 썩 좋진 않다. 그래서 오지 않은 펜을 붙들고 곰곰이 서두를 생각한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던져놓은 서두에 뼈를 단단히 하고 살을 붙여주는 게 영 힘이 든다. 그렇게 써지지 않음에도 담담히 붙들고 내려간 펜 끝은 글 한 뭉텅이를 선사해준다. 문제는 글의 꼬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것인데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글의 완전체는 서두와 말미라 생각하는데 그게 사람으로 치자면 첫인상과 마지막 모습 정도일 것 같다. ‘첫인상’과 ‘마지막 모습’이라는 말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사람의 첫인상과 마지막 모습이 같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여기에 옮겨적고싶다.


그를 처음 봤던 건 합정역이었다. 어느 날 저녁의 끝자락에 왔던 친구의 메시지. 무작정 어떤 사람의 사진과 함께 한번 만나보라는 메시지를 받았었다. 그렇게 그 사람과의 짧았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시험기간에 받았던 소개팅이라 2주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연락만을 이어갔다. 어찌나 말이 잘 통하던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참 여자를 잘 알았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아마 남자를 잘 몰랐던 그 당시의 나를 툭툭 건드는 게 꽤나 재밌었던 모양이다. 2주간의 연락을 끝내고 처음 만나기로 했던 날. 그 날을 기억한다. 워낙에 메시지로 나를 들었다 놨다 했던 탓에 내가 그에게 품었던 기대가 꽤 컸는데, 이게 웬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첫 모습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그냥 좋아졌다. 아-이 쓸모없는 금사빠! 그게 나였다. 금사빠. 어쨌거나 이야기를 마무리짓자면 그게 끝이었다. 끝이 된 자초지종을 좀 늘어놓자면.. 좋았던 첫 만남을 끝으로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두 번째 약속을 잡았다. 두 번째 약속도 첫 만남으로부터 무려 2주나 뒤었는데, 그게 또 이래저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만남 전날. 느낌이 쎄했다. 여자의 육감이랄까. 그런 건 진짜 있다. 그러니 다들 조심하도록, 어찌 됐건 느낌이 쎄했다. 항상 하던 연락을 하던 대로 했음에도 쎄했다. 뒷통수가 서늘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냥 뭔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만남을 갖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뭐였냐면 만나기 전날, 그러니까 내 뒷통수가 서늘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졌던 그날 밤. 그는 그의 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다. 만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헤어지고 3개월 동안 그에게 오지 않았던 그녀의 연락이 왜. 하필이면 나를 만나기 전날 그 서늘했던 밤에 그에게 도달하게 된 것인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최악이었다. 온 마음을 줄 것처럼 나를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전 여자친구에게 돌아갔다. 그것도 하룻밤만에. 그 밤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에게 죄 털어놓았으나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진 못하지만 상관없다. 그냥 그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나를 흠뻑 빠지게 했던 그 첫인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설레었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싸라기 눈처럼 녹아버린 채 시꺼멓게 뭉친 눈덩이로 마지막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는 그 오래묵은 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정도도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이야기가 왜 이리로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은 그 머리와 꼬리가 꽤나 비슷하다. 비슷하다기보단 서로 상응하는 존재로 글 덩어리를 잘 매만져준다. 그래야만 하고. 그러니 무작정 던진 서두를 마무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꼬리를 잘못 갖다 붙여 놓으면 그간 잘 챙겨온 머리와 몸뚱이가 죄 썩어버린다. 고약한 냄새가 나서 그 누구도 쳐다보지 못할만치 썩어버린다. 그렇기에 머리가 좋으면 꼬리도 좋아야 하고, 머리가 매력적이라면 꼬리는 조금 못나더라도 같은 맥락으로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참 곤란하다. 마땅한 글감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 중인 매거진이 있는데, 머리와 꼬리가 조금 밋밋해도 누군가는 재미있게 혹은 피식-하고 헛웃음을 던지며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도 그렇다. 무작정 던진 이 글의 서두를 감싸줄 꼬리를 붙여야 하는데, 그게 지금 퍽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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