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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05. 2017

겨울의 끝에 걸쳐진 그 점퍼

참 난제다. 계절에 끝에 걸쳐있는 사고싶은 것들을 사야하는가 참아야 하는가.


겨울내내 내리지 않던 눈들이 그 동안 오지못해 미안하다 사과라도하듯 요즘들어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겨울이 끝나감과 동시에 다가오는것이 있다. 바로 세일. 아-이맘때가 되면 참 난감하다. 날은 곧 따뜻해질텐데 막을 내리려는 겨울의 문틈 사이에서 반값하는 옷들이 뛰쳐나온다. ‘이래도 안데려가?’ 하면서.


얼마 전 친구와 만나 함께 자주가던 옷집을 갔다. 아뿔싸 50%라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원언니가 말한다. ‘전품목 택에서 50%에요, 천천히 보세요~’ 눈이 돌아갔다. 이것저것 예쁜것들이 없나 혹은 전에 찜해놨던 물건들이 남이있나. 아 근데 참 난감하더라. 마음에 드는 두툼한 니트들이 저렴한 가격에 자신을 데려가라 소리치는데, 곧 있으면 피어날 개나리와 흐트러질 벚꽃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아 이걸 사 말어- 한참을 고민하며 몇 평 되지않는 옷가게를 이리저리 빙빙 돌았다. 왜 이럴때면 사고싶은것들이 더 많은 느낌인지.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옷들마저 예뻐보인다. 데려가고싶다. 여차저차 반 값의 유혹을 견디고 옷가게를 나서려던 차에 문 앞에 걸려있는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내 스타일이었다. 칙칙한 색깔에 벙벙한 디자인. 키도 작은나는 항상 더 작아보이게 만드는 옷들에 끌린다. 어찌됐건 그 벙벙한 점퍼가 내 바짓자락을 붙들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내스타일에 반값이나 세일을 하니 데려가지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수입이 없는 요즘은 돈을 아끼는것이 최선이다. 커피도 집에서 밥도 집에서. 근데 점퍼라니. 그것도 칙칙하고 벙벙한 점퍼라니! 한참을 그 앞에 서있다가 더는 안되겠다싶어 배가 고픈냥 도망치듯 옷가게를 빠져나왔다. 친구와 떡볶이를 먹었다. 아 배를 채우는 내내 그 칙칙한 점퍼가 얼마나 아른거리던지. 이건 떡볶이를 먹는지 점퍼를 먹는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를 채우고 ‘한번만 더 가보자’싶은 마음으로 다시 옷가게로 향했다. '눈에 아른거려서 다시 왔어요 언니, 한번 입어보려구요’ 하고 옷을 걸치는데 이게 웬걸. 내 옷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그 몇푼 안되는 옷을 냉큼 집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온통 살까 말까 혹은 사게되면 커피를 몇 잔 참아야 하는가 혹은 일주일에 몇일을 집에 있어야 하는가 등의 어처구니없는 계산들로 머릿속을 채우기에 바빴다. 아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건 지금 이 두툼한 점퍼를 사면 몇달이나 입을 수 있을까. 곧 날씨가 따뜻해질텐데 지금 사는것이 맞는가 또는 올해 겨울이 되면 더 괜찮은 옷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것들 이었다. 괜시리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은척 사지않을 핑계를 댔다. ‘이거이거 옷 카라가 약간 공장유니폼같지않아?’ ‘안그래도 짧은데 더 짧아보이지않아?’ ‘받쳐입을 옷이 얼마 없지 않을까?’ 괜히 죄없는 친구만 괴롭히다가 꾸역꾸역 다음에 온다는 말을 남기고 옷가게를 나왔다. 


결론을 말하자면 결국 다음날 그 점퍼를 사왔다. 돈이고 뭐고 계절이고 뭐고 그 칙칙하고 벙벙한 점퍼가 내 옷이라는걸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운명이랄까. 하지만 그 점퍼를 사왔다고해서 난제가 끝난것은 아니다. 혹여나 올 겨울 더 마음에 드는 내 옷이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것이다. 2월이나 되야 요즘처럼 반값에 옷들이 나올텐데 그러면 또 얼마 입지 못하고 옷장 속에 넣을 옷들을 살까말까 고민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결국 나에게 올 옷은 올것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만약 겨울이 막을 내리고 있는 요즘 당신의 옷이라 외치는 두툼한 옷들이 있다면 주저말고 데려갔으면 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전, 한달밖에 입지 못한다하여도 그것이 당신의 옷인것을. 어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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