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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14. 2017

내 시간은 내껀데?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온전한 내 시간 속에서 쫓기며 살아가는가.


나는 줄곧 뉴스에 언급되던 사람이다. 맞다. 나는 취준생이다. 속된말로 하자면 그냥 백수다. 작년 1월부터 다니던 회사에서 일년을 체 채우지 못하고 나왔고 그렇게 의도적으로 또는 자의적으로 백수를 자처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가지 않은게 어느덧 3달하고도 반이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하고 그것도 세분화해서 따지자면 토익으로 시작하는데, 토익쯤은 이제 중학생들도 보는 시험취급을 받으니 오픽이나 토익스피킹정도는 기본으로 하고있어야 한다. 거기에 꾸준히 구직사이트를 들어가 내가 갈만한 곳이 있나 혹은 나를 뽑아줄 만한 곳들이 있나 살펴야하고 그에 맞는 소양을 키우기 위해 혹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들은 책들만 여러권이다. 그렇게 비어있는 시간을 비어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다. 아니 어색했다.라고 해야겠다. 이건 정말 방금 머릿속에 든 생각이다.



그래. 오늘 하기 싫다면 그냥 하지 말자

방금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산문집을 다 읽었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하고싶은것을 찾았으니 그에 맞는 걸 해야하는데, 아-왜 뭘 해야할지 알면서도 오늘따라 이렇게나 하기 싫은지. 시체처럼 꼼짝않고 누워있고싶다 그냥 천장만 보면서’ 뭐 이런 생각들. 그래서 읽었던 부분들을 제대로 읽지못해, 다시 읽으려 눈동자를 위쪽으로 돌리는데 문득. ‘오늘 하기 싫다면 그냥 하지말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 하기 싫다면 그냥 하지 말자. 이건 온전히 내 선택이고 내 시간이 아닌가. 꼭 누군가에게 시간을 맡겨놓은 것 처럼, 똑딱똑딱 스톱워치라도 걸려있는 것 처럼 초침이 지나가는 소리에 그리고 분침과 시침이 흘러가는 소리에 괜시리 촉박해진 마음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자괴감만 가져올 뿐이라는것을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일까. 무엇을 해야하는지 안다면, 하지만 그것들을 지금 당장은 너무나도 하고싶지 않다면 미루면 되는것이다. 아주 쉽다. 어정쩡하게 하기싫은 마음과 해야하는 것들을 맞물려 친해지게 하다가는 오늘 혹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해야하는 것들에 대한 흥미 혹은 열정들마저 다 도망가고만다. 그것도 아주 멀리. 그래서 결정했다. 오늘은 그저 뚱땡이 바나나우유나 마시면서 읽고싶은 책들을 보고, 보고싶은 드라마나 영화 혹은 방 천장들을 보고, 엄마와 아빠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렇게 내 시간을 보내기로. 그리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얻기로.


참 신기하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으면 불안해야한다니.

우리들은 무언가 정체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 쫓기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하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참 신기하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으면 불안해야한다니. 무언가에 쫓기는데도 불안하지 않으면 그것마저 불안해야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 사실들로 가득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것이 꽤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건 온전히 내 삶이고 내 시간이고 나의 선택이다. 후회도 책임도 온전히 내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에 익숙하다보면 남을 탓하는것에 젖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조금 더 심각해지고나면 자신이 선택했건 하지 않았건, 그 어떤 것들에 대한 결과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느껴진다. ‘아, 사회가 이 모양이니 내가 이렇지’ 혹은 ‘아 그냥 오늘은 학원가지말고 영화나 볼껄’ 이러다보면 결국 답은 이거다. 내가 선택한 것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 누군가 강요한 것인지 알지 못하게되고,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방법마저 잊게되며 혹시라도 자신이 선택한 무언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순간에는 형체없는 두려움에 자기탓을 하게된다.


내 시간은 내 것이다. 당신의 시간도 당신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온전히. 그러니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지거나 길거리를 집으로 삼아야하는 일들이 아니라면 그냥 당신의 그 시간을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또한 당신을 위한 일이다. 내 시간을 잘 쓰는 법, 혹은 계획을 잘 짜는 법, 따위의 책들보다도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혹은 스스로의 시간들을 인정하고 꾸밈없이 내버려둘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만오천원짜리 혹은 이만이천원짜리의 책들보다도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임을. 오늘 꼭 적어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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