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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28. 2017

시간이 담긴 바람냄새

바람에는 냄새가 있다. 누군가는 알 거다. 그래서 시간의 냄새가 가득 담긴 계절이 변해가는 이른 3월 늦은 6월 또 다가올 이른 11월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계절이 담긴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는건 아주 기분좋은 일이니까.

느즈막히 아침을 맞이하면 가장 먼저 침대 옆 큰 창을 연다. 그러면 밤 사이 탁해진 공기가 금새 사라지고 아침을 담은 바람이 들어온다. 그러고는 침대위에 서서 내 몸의 3배쯤 되는 커다랗고 폭신폭신한 이불을 팡팡- 털면 그 무수한 먼지들이 내 방으로 들어온 햇살을 만나 둥실둥실 방 안을 채운다. 뭐 그 먼지들 또한 금방 창 밖으로 사라지지만. 엊그제까지만 해도 일어나자마자 그 큰 창을 열면 금새 온 몸을 감싸는 날카로운 바람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는데 오늘은 글쎄 창을 열고 거실에 나와 책을 읽다가 한참을 몰랐다. 그 창이 열려있었다는 사실을. 몇 일 사이 그새 바람이 따뜻해졌다. 혹시 봄이왔나-싶어 창살에 코를 맞붙이고 킁킁, 한참 냄새를 맡으려 노력을 했다. 봄이 오려는 이른 3월에는 언제나 봄냄새가 가득했으니까. 그런데 아직은 봄이 아닌가보다-했다. 아무리 냄새를 맡으려 해도, 이른 3월에만 맡을 수 있는 봄냄새는 나지 않았다. 조금 아쉬웠다. 계절이 담긴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는건 아주 기분좋은 일이니까.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나 겨울냄새가 가득 담겨있는 이른 11월의 바람냄새를 가장 좋아한다. 더운여름보다 꽁꽁싸매는 추운 겨울을 더 좋아해서라기보단, 쓸쓸하고 약간은 텁텁하기도 한 그 이른겨울의 냄새는 혼자있는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넨다. ‘내가 또 왔어’하면서. 은근한 겨울냄새가 가득 담긴 이른11월의 바람은 언제나 멋지다. 나무도 땅 위의 잔디들도 흙 속에 사는 벌레나 거기에 더해 사람들 마저도 그 낯설고 날카로운 추위를 피해가려는 듯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꽁꽁 묶여있는 그 쓸쓸한 계절을 파고드는 겨울의 바람은 언제나 멋지고 당당하게 홀로 나를 찾아온다. 가끔은 너무도 혹독하게 불어대는 겨울바람이 무섭기도 하나, 내가 너무 한줌의 자비도 없이 날카로우니, 따뜻한 곳에 들어가 몸이라도 녹이라는 듯 자작한 벽난로가 있는 조그만 카페로 들여보내기도 한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그렇게.  


이른3월 혹은 늦은 3월에 찾아오는 봄냄새 가득한 바람은 아련하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추억들이 가득 담겨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추억임은 확실한 그런 기억들, 아니 추억들. 괜히 어린아이가 된 느낌도 들고 내 머리 위로 따뜻하게 입혀지는 햇살들은 꼭 무언가라도 시작해야할 것 같은 기분을 안겨준다. 환한 낮에 봄의 햇살과 봄의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다보면 왠지모르게 눈을 꼭-감고싶어진다. 괜시리 노곤해지는 그 바람냄새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의 어설픈 걸음같기도 하다.


늦은 6월 혹은 7월의 중간쯤에 찾아오는 여름의 냄새는 축축하다. 곧 들이닥칠 장마의 냄새는 왜인지 모르게 여름의 이른 시간부터 찾아온다. 나는 비가 내리는 것을 참 싫어했는데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나는 비내리는날이 참 싫어’라고 하며 그 이유를 ‘왜냐면 난 지렁이가 싫거든, 비오는 날에는 지렁이가 나오잖아’ 라고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비가 오는 날이 좋더라. 물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보기싫은 지렁이도 보이고, 머리에 힘을 쓴 보람도 없이 축축 쳐지기도 하며 한 손은 무조건 우산의 몫이라는 것이 다니는 내내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가 내리면서 풍기는 비의 냄새는 뭔지 모를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여운과 차분함, 무엇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나를 위한 생각들을 아무런 방해없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비가 오는 날에 먹는 김치전은 아주 기가 막힌다. 아,물론 김치전이 더 맛있어지기에 비의 냄새가 몰려오는 이른 7월의 냄새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 3월에만 맡을 수 있는 봄냄새는 아직이었다.

오늘도 느즈막한 아침에 침대 옆 큰 창을 열었다. 그러니 밤 사이 탁해진 공기가 금새 사라지고 조금은 차가운 아침바람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침대위에 서서 내 몸의 3배쯤 되는 커다랗고 폭신폭신한 이불을 팡팡-터니 그 무수한 먼지들이 내 방으로 스민 햇살을 만나 둥실둥실 방 안을 채웠다. 그러고는 바람을 따라 창 밖으로 사라졌다. 어제만 해도 일어나자마자 그 큰 창을 열면 금새 온 몸을 감싸는 따스한 햇볕에 아,봄이 왔나 했는데 오늘은 글쎄 열자마자 밀려오는 날카로운 바람에 금방 문을 닫아버렸다. 하루사이 그새 바람이 차가워졌다. 혹시 봄이왔나-싶어 창살에 코를 맞붙이고 킁킁, 한참 냄새를 맡으려 했던 어제의 노력이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봄의 냄새가 나지 않았던 어제가 떠올랐다. 이른 3월에는 언제나 봄냄새가 가득했으니까. 역시나 봄이 아닌가보다-했다. 아무리 냄새를 떠올리려해도, 이른 3월에만 맡을 수 있는 봄냄새는 아직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 계절이 담긴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는건 아주 기분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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