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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r 15. 2017

나를 비워내는 시간

혼자 보는 영화가 좋은 이유

알았다. 혼자 보는 영화가 좋은 이유를.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다음 목적지까지의 시간은 온전히 나다. 그게 좋다. 온전히 내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채운다. 영화관에서 나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는 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충분히 비워내야한다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나에겐 참 중요하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 내 생각이 내 시간이. 혼자 카페를 가고 그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고를 하기도 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혼자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그에 따르는 생각들을 해내는 시간이라 느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혼자 있는 시간은 충분히 비워내야한다. 걸치적거리는 것들을 탁탁 털고 비워내는 거다. 이럴때면 영화관이 집 앞에 바로 있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시간.


영화관으로 들어서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전 매점 반대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젤리를 하나 샀다. 평소에 젤리보다는 초콜렛을 좋아하는데 그날따라 왠지 왕꿈틀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처음 영화를 보러 갔던 2013년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첫 휴학을 했을 때였는데 그때는 괜히 집 앞에 영화관을 두고 멀리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그래야 외출하는 기분이 좀 났던걸까? 버스를 타고 가야했던 그 영화관은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도 십오분가량을 걸어가야했던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왜 굳이 집앞에 있는 똑같은 영화관을 두고 그 멀리를 갔던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때는 항상 해가 뜨거웠던 낮에 영화를 보러 갔었다. 얼마나 열심히 봤는지 혼자서 숱하게 봤던 영화들은 나에게 vvip라는 등급을 안겨줬다.(vip등급을 연속으로 2년하게되면 얻게되는 등급이다) 그 때는 아마 휴학을 해서 텅 비어버린 낮 시간동안 만날 누군가도 있지 않아서 혹은 심심한 시간을 달래려 영화관을 찾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지금은 음.. 무언가 해야하는것들이 가득한 시간들을 비워내는 시간이 된듯하다. 영화를 보러감에도 불구하고 채워진다기보단 비워내는 느낌이 강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니까.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온통 영화생각을 한다. 진한 여운이 남지 않는 조금은 가벼운 영화일지라도 온통 영화생각뿐이다. 주인공이 미소짓던 그 장면, 묵묵히 걸어가던 뒷모습 뭐 그런것들에 대한. 그래서 나에게 혼자 영화를 본다는건 좋다. 영화를 봐서 좋은게 아니라, ‘혼자’여서 좋은 시간이다. 내가 나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시간.


아참, 올 해 그러니까 어느덧 세달이나 지나버린 2017년에 회사를 다니면서 일반으로 떨어졌던 나의 등급이 다시 vip로 돌아갔다. 얼마나 반갑던지,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괜한 오기로 vip등급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아마 앞으로는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이 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혼자 영화를 보는 그 소중한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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