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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r 31. 2017

8개의 알약과 함께

오늘아침 8개의 알약을 먹었다. 요즘 아주 엉망진창이다. 대학교 4학년 졸업전시를 한창 준비할때 생긴 피부염은 약 2년간 알러지인줄 알고 있다가 요근래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증상이 없어도 한참동안 약을 먹어야한다는 의사에 말에 3일에 한번씩 꼬박꼬박 피부과를 다니고있다. 보이지 않는 작아터진 벌레들이 온 얼굴을 횡단하는 것 같은 간지러움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만큼 고통스럽고, 조금이라도 긁으면 곧장 부어오르는 눈꺼풀은 그나마도 간신히 붙어있는 쌍커풀을 매장하려든다. 안그래도 짜증이 가득한 요즘 한껏 그 짜증을 치켜올려주는 주역이다.


다들 알거다. 요즘 맑은 하늘을 보는게 로또 당첨되는것마냥 힘이들어졌다. 말이 미세먼지지, 중국 공장에서 혹은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금속들이 알알이 박힌 바람이 공중을 돌다 우리에게 고스란히 들어온다. 얼굴이 간지럽고 눈에 모래가 굴러가는 느낌이 들고 콜록콜록 기침이라도 나면 그래 맞다. 그게 죄다 미세먼지덕이다. 거기에 더해 아침에 입고나온 옷이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추운덕에 감기에 걸리기 쉽상이다. 그래, 이 모든게 다 나다. 그래서 오늘아침, 8개의 알약을 먹었다.


요즘들어 이렇게 나이가 드는건가,싶다. 안다.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젊은 나이일 수 있다는거. 근데 이렇게 그냥 겉모습만 늙은채 이런저런 질병치례를 하다가 생각은 여전한데 몸만 늙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엄마가 떠오른다. 그래서 요즘들어 엄마가 더, 친구같다. 그냥 이렇게 나이가 드는건가 싶다.


음식 알러지도 없고, 아무 화장품이나 써도 튼튼했던 피부덕에 친구들이 피부과를 다니는 모습을 보면 ‘너 참 불편하겠다’ 하며 속으로는 ‘난 작은 피부염 하나도 없는게 정말 행복한거구나’했던게 엊그제같은데 이제는 친구들이 날 가엾이 여긴다. 벌레가 얼굴을 기어다니는것처럼 간지러워 죽겠어,하면 친구들은 으-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동정하는 눈빛을 건넨다. 이제는 아무 로드샵 화장품이나 쓰는것도 불가능하다. 괜히 피부에 알러지 혹은 내 지루성 피부염을 자극시킬 것 같은 물질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몸을 사리게되고, 혹시나 하고 사온 화장품이 얼굴을 뒤집는 날에는 아, 또 이건 누굴 줘야할까 카톡을 뒤지곤한다. 거기에 미세먼지가 발악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마스크를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게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피부염이 더 발악을하고 목이 따끔따끔해 기분이 몹시 불쾌해진다. 이러다 언젠가는 금속알러지까지 생기는건 아닌가 싶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귀걸이도 멀쩡하게 하고다니던 어린시절의 나를 그리워하게되진 않을지 매우 걱정이다.


세상에, 8개의 알약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어야할걸 생각하니 끔찍하다. 무언가를 먹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늘 아침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는 내 목을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목젖이랑 그 주위가 다 벌겋네요, 아프겠어요’ 편도가 부은것도 아니고 목젖이 부은건 아마 미세먼지 덕일거다. 아, 거기에 더해 어처구니 없이 벌어진 일에 열이받아 한참을 친구에게 열변을 토한 탓도 있을거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 2개의 병원을 오가고 같은 약국을 2번 갔다. 어제 도착한 반려견의 간식재료를 다듬고 핏물을 제거해 건조기에 올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아, 오늘은 할 것 투성이다. 마음을 추스려야한다. 8개의 알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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