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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Apr 04. 2017

이 간사한 인간

먹고싶던지 먹기 싫던지 하나만 하거라

사실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뭐 그런건 없었다. 근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결혼을 해야 그 전에 프로포즈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결혼은 하기 싫으나 프로포즈는 받고싶은 이 아이러니함을 어찌해야할까. 이런 아이러니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에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평생 일을 안할 순 없으니 구직은 해야겠는데, 막상 회사를 다니고나면 밀려올 피곤함이 벌써 느껴진다. 돈은 벌고싶으나 일은 하기 싫은거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먹고는 싶으나 살을 빼고싶고, 누군가를 만나고는 싶으나 집 밖에 나갈 준비를 하기 귀찮아 죽겠다. 아-이 간사한 인간. 이 빌어먹을 귀차니즘.



보고싶지만 보고싶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먹고싶다.혹은 어딘가를 가고싶다. 쉬고싶다. 자고싶다. 뭐 이런식의 1차원적인 감정들로 생각들을 이뤘는데 요즘은 그게 아니다. 아-먹고싶은데 먹기싫다 라던가, 쉬고있지만 더 격정적으로 쉬고싶다. 뭐 이런식이다. 그러니까 이미 하고자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 하고 있으면서도 보다 심층적으로 그 행위를 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니 골이 아파온다.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을 더 격정적으로 하자니 그 방법이 또렷하게 떠오르지도 않는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런식이다. 영화를 보고싶지만 보고싶지 않은 것이다. 집에서 하루종일 쉴 수 있는 날이 왔을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 나에게 떨어졌을때 내 몸에 한 부분처럼 붙어다니는 스마트폰마저 베개 아래에 묻어버리고 보고싶던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려치면, 금새 그게 귀찮아져버리는 것이다. 컴퓨터를 키는 것이 귀찮은지,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을 하는 것이 귀찮은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피곤한게 싫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보고싶은데 보기 귀찮은 것이다. 거의 최악의 상태다. 이럴때는 그 어떤걸 해도 귀찮고 하기싫고 그런 마음 뿐이라 나도 나를 어찌할 수가 없다. 그나마 마음을 추스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있는 책을 읽는다. 비스듬하게 침대에 기대누워 적당하게 자리를 잡고 책장을 넘긴다.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그나마 좀 정리가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모든 것이 귀찮고 또 하고싶으나 하기 싫은 그 알 수 없는 마음은 밤이 되도 나아지지 않는다. 밤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도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왜냐, 하루종일 침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던 침대는 밤이 되어도 변할 생각조차 없다. 그렇게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뭘 하고있나 싶다. 사실 지금도 좀 비슷한 마음이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근데 또 배가 아파온다.

요 근래 썩 좋지 않던 몸상태는 더욱이 그 마음을 부추기는데 이런 식이다. 부어올랐던 목젖과 그 주변은 원상태를 돌아온듯 하나, 이번에는 코가 말썽인 것이다. 새벽부터 꽉 막힌 코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반 수면상태로 한참을 지나보니 이건 잠을 잔건지 만건지 머리가 어질어질한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팽-하고 코를 풀어도 애꿎은 귀만 먹먹해지고 막힌 코는 뚫릴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들숨도 없는채로 크게 날숨만 하-하고 뱉자 그나마도 몸 속에 남아있질 않던 산소가 몽땅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코가 완전하게 막혀버리니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것은 물론이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제 저녁, 갑자기 먹고싶어지는 불닭볶음면이 생각나 오전에 이비인후과를 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는길에 불닭볶음면 한 묶음을 사왔다. 코가 막혀 냄새는 나지 않으나 그 매운맛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한 봉지를 뜯어 보글보글 끓여냈다. 벌건 냄비 안 불닭볶음면이 매워는 보이나 매운내가 나지 않는건 아쉬웠다. 탁자에 앉아 불닭볶음면을 먹는데 이게 왠걸. 그저 매끌거리는 면의 식감만 느껴질뿐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는 것이다. 근데 이게 또 왠걸. 맵기는 드럽게 맵다. 맛은 나지 않는데 맵기만 맵다는게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그걸 또 먹고는 있는 내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맛은 느끼지 못하나 먹고는 싶어 먹었더니 혹시나가 역시나,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뭐 이런 식이다. 그래도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온 힘을 끌어모야 해야 할 것들을 하고나니 온 몸에 힘이 빠져 침대에 드러누웠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근데 또 배가 아파온다. 거의 최악의 상태였다. 위 아래로 뭔가가 다 나올 참인가, 싶다가 그럴 힘도 없어져 물에 젖은 물미역처럼 이불에 붙어버렸다. 그러다 날이 밝았다. 지나간 어제가 고달팠음에도 오늘 아침은 아무 일도 없다. 꽉 막혀 돌아올 생각이 없어보이던 코도 숨을 쉴 정도로는 호전되어 살만해졌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아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아침 말아먹은 시리얼의 단맛이 조금은 느껴져 그나마도 좀 살만해졌다. 그럼에도 오늘 또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그 무언가를 하고있음에도 더 해야할 것 같고, 하고있지 않음에도 더 격정적으로 하고싶지 않아진다. 아- 이 간사한 인간. 하고싶으면 그냥 쭉 하고싶던지, 하기 싫으면 그냥 하기 싫던지.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하면서도, 어느새 또 어제보다 좀 나아진 코감기에 기대어 오늘은 좀 맛이 날까 싶은 마음에 불닭볶음면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보면. 그냥 웃음만 나올 뿐이다. 먹던지 말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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