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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Mar 26. 2017

괜찮아 사랑이야

보통의 드라마들은 오락성을 강하게 띄고있기 마련이다. 아마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미디어 매체에 대해 사람마다 정의하는 방식과 의미가 다를것이다. 보통 드라마들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벅차거나 어려운 일들을 매우 행복하게 혹은 비극적으로 다루며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타지를 채워준다 생각한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던 갸냘픈 여주인공에게 백마탄 왕자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벤츠탄 재벌이 다가와 사랑에 빠진다던가, 눈 밑에 점 하나만 찍으면 못알아본다는 어설픈 설정으로 자극적인 복수극을 그려내기도한다. 그러나 아니다. 달랐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나에게 있던 드라마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주었다.



색다른. 그야말로 남다른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간 봐왔던 드라마들은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매우 진부하고 의미없었다. 아마 꽤 많은 드라마들이 열정적으로 끌어올린 스타트에 미치치 못하는 마침표를 찍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아왔으리라. 보통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유독 ‘사랑’을 필수양념처럼 드라마에 들이부어놓는 관습이 있다 생각하는데, 내 주변인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두 남녀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알콩달콩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 까지는 재미있게 보이나, 그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되고 받아들여 사랑을 시작하면 극도로 흥미가 떨어진다고. 이말은 결국 뻔하다는 얘기다. 드라마의 시나리오 초반에 걸려있는 다양한 형태의 허들과 장애물들을 뛰어넘기만하면 그냥 바로 결승선도 없이 끝이 나버리는 것이다. 흥미로운 소재로 처음을 일구던 드라마도 사랑으로 Goal in 하기만 하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아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달랐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가지고있는 뻔한 플로우와 소재가 아니라, 색다른. 그야말로 남다른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괜찮아 사랑이야’에도 여느 드라마들에 쓰였던 재료들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것은 아니다. 여자와 남자간의 사랑이야기도 있고, 그들이 사랑을 하다 걸려 넘어지는 장애물들 또한 여럿 등장한다. 알콩달콩 서로를 밀고 당기다 서로에서 푹 빠지는 어쩔 수 없는 일련의 관례들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그 연출방식 혹은 노희경 작가가 적고 배우들이 뱉은 대사들은 달랐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들을 내비치는 모습도 달랐고, 작가가 고심끝에 내놓은 대사들을 다시한번 다듬어 뱉는 배우들의 밸런스도 완벽했다 생각한다.




모두가 주인공들이었다. 이건 정말 멋진거다.

드라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시청자로서 있는척 몇마디를 뱉었더니 슬슬 골이 아파온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좋은 이유는 그냥 이거다. 거슬리는것 하나 없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웠다. 해수의 어투와 그를 맞받아치는 재열의 단단함. 해수와 동민과 수광의 케미. 수광과 소녀의 어설픈 밀고당김. 실로는 존제하지 않았던 강우의 존재감. 해수가 그녀의 엄마를 이해하게되는 과정과 다양한 사연을 갖고있던 해수의 환자들. 이 모든것들이 좋았던 이유는 작가가 드라마 안에 풀어놓았던 저 많은 것들이 전부 우리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재열과 해수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인물들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상처를 매만져주는듯했다. 또 하나 말하자면,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이 각자가 주인공들이었다는 점이다. 보통 드라마의 경우 주연과 조연과 그 외의 배우들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반면, 전체 드라마에서 1-2회밖에 출연하지 않았던 해수의 환자들 혹은 동민의 환자들 하나 하나가, 모두가 주인공들이었다. 이건 정말 멋진거다. 특히나 좋았던 점은 마지막화였다. 보통 드라마의 마지막화는 그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아주 강한 기대감을 품고 애타게 기다리나 막상 마지막화가 끝나면 ‘저게 뭐야?’ 혹은 ‘그래서 뭐 어떻게됐다고?’등의 의견들이 분분하게 드라마를 찔러댄다. 허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마지막화는 너무나도 시청자들만을 위한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새하얀 방 안에서 새하얀 셔츠를 입은 주인공들이 빨갛게 잘 여문 토마토를 서로에게 던지며 웃는다. 그 장면을 보고있노라면 나 또한 새하얀 셔츠에 빨간 토마토를 내던지고있는 느낌이다. 서로에게 묵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이 힘들고 답답한 세상에 나 조금 지쳤다며 투정이라도 부리듯 그렇게. 비단 이 뿐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끝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도 이 드라마가 그리워지고 생각나는 까닭은 ost의 영향도 강하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실렸던 ost가 모두, 전부 좋았다. 그래서인지 ost만 들어도 그 노래가 담겼던 장면들 속의 해수와 재열이와 강우와 모두가 보인다. 아-정말 좋았다. 애착이 많이 가는 드라마여서인지 나는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 밤, 눈을 감으면 지금도 티격태격하며 잘 살아가고 있을 재열과 해수와 어느덧 두 돌쯤 지났을 그들의 아이와 동민과 수광이와 소녀 그리고 재열의 어릴적 강우가 궁금해진다. 또, 그립기도 하다. 왠지 그들은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함께 의지하고 극복하고 있을것 같다는 형체없는 믿음에 간혹 나에게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을 기대기도한다.


해수와 재열의 대화 중 이런 대화가 있다.   


사랑이 정말로 저들을 구할까?

그럼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거라고?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정도 되야 사랑이지.

그런건 누구한테 배웠니?

사랑한테 배웠지.


뻔한 로맨스의 대사들과 서로에게 흠뻑 빠져 허우적대며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주는 사랑이 아니라,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는 진짜 사랑을 이야기해주는 재열과 해수가 너무나 고마웠다. 또 거의 끝을 달려가던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재열이 퇴원을 하기 전 해수에게 이별을 고하며 이런 말을 한다.


사랑은 상대를 위해 뭔가를 포기하는게 아니라 뭔가를 해내는거야. 나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계획 포기하지마. 자유로운  두발로 계획한 대로 떠나. 1년동안   잊으려고 최선을 다해. 그러고도  잊으면 다시 와서 보자.




그의 꼭 감은 눈 앞에 내가 서있을 수 있기를,

온전히 해수만을 위해 담담하고 단단하게 이별을 고하는 재열을 보며 해수는 자신을 떠나보내는게 쉽냐고 말한다. 그는 이에 ‘어려워’라고 답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의 삶을 전부 끌어안고 사랑하려 아파올 자신의 사랑을 참아내는 재열은 잔인하고 차가웠지만 찬란히 아름다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하여 곁에 붙들고만 있으려는 ‘사랑’을 사칭하는 수 많은 감정들 사이에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아주 담담하고 그리고 단단하게 사랑하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의 감정을 붙잡는것이 힘들고 벅차다고 느껴질때, 그럴때마다 재열과 해수를 떠올린다. 그러고나면 지금 내가 겪고있는 힘든 감정들과 벅찬 생각들을 툭, 가볍게 치며 환한 웃음으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들이 보인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웃음에 작은 미소로 답하며 잠에 든다. 또 언젠가는 가슴이 답답해진 누군가가 잠이 오지 않는 어느날 밤. 그의 꼭 감은 눈 앞에 내가 서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괜찮아, 사랑이야




사진출처 SBS <괜찮아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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