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 좋은 날
볕이 좋은 날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집안에 들어온 햇살을 양동이에 쓸어 담을 수 있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 종종걸음을 친다. 미뤄두었던 달력 붙이기, 장 봐오고 아직도 정리를 안 한 깡통과 병과 상자들 정리하기, 빨래 접고 세탁기 돌리기가 모두 한꺼번에 진행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하는 내가 그나마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날은 바로 햇살이 집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시금치 한 단을 다듬어 물에 여러 번 헹구고 바구니에 담아두었다. 그 시금치를 버터에 볶아서 아침을 먹고, 그 시금치를 토마토소스에 넣어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남아서 저녁 궁리하다가 김치 볶음 얘기가 나와 남은 시금치는 냉장고로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시금치가 든 작은 봉지를 잊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해가 드니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예뻐서 주방과 세탁실을 떠날 수가 없다.
좋아하는 찻주전자 하나의 주둥이가 깨어졌다. 버리기 아까워서 꽃병으로 쓴다. 찻주전자를 버리는 건 면했으나 당장 아쉽다. 다른 주전자가 없는 게 아니건만 좋아하던 게 없어지니 다른 것들은 눈에 안 들어온다. 바닥에 찻물이 든 예전의 찻주전자를 꺼내어 차를 우렸다. 차 맛은 같은데 나는 왜 서운할까?
겨울 볕은 아직 노란 마당에 머물러 있다.
꿈꾸기 좋은 날이다.
또 한 번의 주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