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꺼냈던 야채로 주스를 만들고 남은 것들을 냉장고에 넣다가 애호박을 보았다. 금방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참인데도 그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어서 다시 도마와 칼을 꺼냈다. 초록색의 단정한 애호박만 보면 호박전 생각이 나서 자주 사 오곤 하지만 정작 호박은 나물이나 볶음, 혹은 찌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냉장고의 야채 칸을 들여다볼 때마다 호박이 하나 있으니 언제고 호박전을 부쳐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달콤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닌지. 오늘은 호박에 양파를 조금 넣어서 함께 부쳤다.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호박전 같은 경우가 많다. 생각으로는 그럴듯한데 막상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는 그저 그런 보통의 호박이 되는 것. 머릿속의 생각들을 꿈이나 소망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걸 세상에 꺼내는 일은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달콤하고 부드럽고 바삭하고 고소한 호박전이니 말이다.
모란의 꽃눈.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들을 한 곳에 모아서 심는 건 남편의 취미다. 선인장과 수선화를 심어둔 작은 화분에 낯선 식물이 자라고 있다. 때가 봄인 걸 어찌 알았는지 이렇게 화사한 분홍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