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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pr 21. 2016

2016.4.20
백석과 복숭아꽃

                                                                                                                                               어제는 답답해서 아이 학교 나가는데 함께 나갔다가 서현역에 내렸다. 우체국에서 소포 하나를 부치고 은행에 들려 현금을 조금 찾고 나니 일은 끝이었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신록은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단지를 들고 사람들이 몰려온다. 새로 문을 연 문화센터에 공개강의를 들으러 오라는데 주제가 관상학이다. 관심 없다고 했더니 친구랑 같이 와도 된단다. 이게 무슨 동문서답인지. 우습기도 하고 심통이 나기도 했는데 우체국 앞에서 교보문고까지 걸어가는 중 같은 팀을 서너 번이나 만나니 나중에는 피곤이 몰려오겠지. 길을 건너 후다닥 지하로 뛰어들어가서 서가를 둘러봤다. 시인들의 초판본을 다시 출판하는 것이 붐인가 보다. 하나같이 비닐로 포장을 해놔서 들춰볼 수 없었다. 백석의 '사슴'이 보이길래 집어 들었다. 백석을 읽고 있으면 배가 고프고 등이 따스해져온다. 그런 의미로 그의 시는 내게 매우 감각적이다. 저녁을 지으면서 틈틈이 시 한 편씩 읽고 웃다가 그만 아득해진다.

                                                                       


복숭아꽃이 한창이더니 하나둘씩 나풀거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복숭아꽃을 따주어야 복숭아가 잘 열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바라보기도 아까운 저 꽃을 어떻게 따겠는가 말이다. 가지에 매달려 있는 꽃을 따내려다가 싱싱한 꽃을 가지에서 떼어내는 그 감각이 저릿하게 전해져서 그만둔 것이 여러 번이다. 시들어가는 꽃은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것, 시들어서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지는 꽃들을 모아 소꿉놀이를 한다. 맑은 물에 복숭아꽃이 떠내려오고 그걸 거슬러 올라가면 무릉도원이라 했다. 우리 집이 거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은방울꽃의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무수히 많다. 또 부자가 되고 말았다. 



무스카리는 나를 닮았다. 신산하게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행색이 말이 아니건만 기어이 꽃대를 올리는 고집, 혹은 강단. 사실 우아하게 꽃봉오리를 열고 신선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장미나 백합을 닮았다고 하면 좋으련만 그게 사실이 아닌 걸 너무 잘 안다. 그래도 괜찮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스카리는 종을 닮은 작은 꽃을 무수히 달고 있어서 꽤 예쁘기도 하니까. 



지난번에 심은 미니 당근.



너무 많은 씨앗을 뿌린 순무, 본잎이 나와서 옮겨 심기를 하는 중인데 이제 더 이상 자리가 없다.



내가 뿌려 놓고도 무엇인지 몰라 답답한 새싹, 알 것도 같고 익히 보던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알쏭달쏭하다(아시는 분은 좀 알려 주세요).



복숭아꽃도 향기가 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스카리도 어여쁘고 
천천히 맡아보니 복숭아꽃향기도 우아하구나. 
나도 좀 더 예뻐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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