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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16. 2016

2016.6.15 - 6월의 정원

                                                                                                                                                                                                                                                                                                                                                                                                                                                                                                                                                                                                                                                                                 

마당은 여전히 실험 중이다. 햇빛, 바람, 물주기, 모종 심는 시기와 물주기에 관해서까지도 아직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꽃을 심고 야채를 거둔다. 기르고 있는 꽃이며 나무, 채소의 이름도 알쏭달쏭하고 조금 길거나 어려운 것은 아예 잊는다. 그냥 내 식대로 노란 꽃, 하얀 꽃 이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은 그 모든 무모함, 무지, 거듭되는 실패 등을 쓱 하고 감출 수 있는 멋진 달이다.



화관처럼 가지런히 모여서 핀 데이비드 오스틴 위즐리다.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드문 장미. 



작년 봄에 광주까지 내려가서 구해온 트리 로즈와 필그림.



오월의 마당을 밝히던 작약과 모란이 스러지고 덱 아래로 나란히 심은 장미가 피어나는 유월이 오면 아침마다 붕붕거리는 벌 만큼이나 나도 부산해진다. 꽃잎을 후드득 떨구기 전에 채반에 받아서 말려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 홀로 시들어버린 장미는 없는지 살피고 잎에 검은 반점이 생긴 것들은 바로 자른다. 아침마다 장미 근처에서 한동안씩 시간을 보내다 돌아서면 손과 팔이 가시에 긁혀있는 걸 발견하는 것도 다반사다. 모양도 색도 어여쁘지만 내가 장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향기다. 엄마의 분 냄새, 마개를 금방 연 신선한 레드와인의 냄새, 때로는 농익은 복숭아 냄새, 좋아하는 향초에서 익히 맡아왔던 냄새, 아니 향기. 그러니 유월에 내게 말을 걸려 하면 그대, 향기로 말하라. 



몇 년 동안 꽃양귀비로 몸살을 앓았다. 해마다 화원들을 뒤지며 찾아다녔다. 날개처럼 가볍고 향기처럼 연약한 꽃잎을 가진 키가 크고 날씬한 몸의 꽃양귀비를 찾는 건 몇 년 전만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동해에 다녀올 때 꽃양귀비가 무더기로 피어있는 곳을 지났다가 다시 돌아가서 씨앗을 받았다. 제주에 가서도 그랬다. 씨앗을 사기도 했다. 마당에 그 고운 것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는 게 꿈이었다. 작년에 열몇 송이가 피었는데 매일 그 앞에 가서 앉아있기도 했다. 그게 다 귀해서였다는 걸 올해 알았다.



몇 년 동안의 수고와 아쉬움을 올 한 해에 다 받는 듯했다. 뜨거운 햇볕에 오후가 되면 꽃잎이 다 떨어져도 다음날 아침이면 새로운 꽃이 전날보다 더 많이 피어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신이 났다. 꽃을 피우면서도 키가 계속 자랐다. 어쩌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그대로 다시 위로 가지를 뻗어 꽃봉오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많았고 생각보다 잘 자랐다. 마당이 좁게 느껴졌다.  절정이 지난 요즘에는 아침마다 나가서 조금이라도 시든 기색이 있는 것들을 찾아내서 뿌리까지 뽑아 버리고 들어온다. 나도 내가 무섭다.



수레 국화도 올해로 삼 년째다. 싹이 나왔을 때는 너무 연약해서 물을 줄 때마다 쓰러지더니 푸른색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달린 동그란 꽃을 피우면서 몸집을 엄청나게 불렸다. 주목 옆에 자리 잡은 아이들은 키가 너무 크고 가지도 많아서 나무처럼 보였다. 역시 며칠 전 아침에 나갔다가 뽑았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줄다리기하는 것처럼 힘을 주어 당겨도 좀처럼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아무래도 올해 마당은 영양과다인 것 같다. 화장품을 너무 많이 발라서 얼굴이 번들거리는 중년 아줌마처럼 뻔뻔하다. 할 수 있다면 내가 그 화장 좀 벗겨주고 싶은데. 



그리고 라벤더,



아쉬운 알리움



작지만 씩씩한 캄파눌라



분홍과 빨간 찔레꽃. 하얀색도 있는데 사진이 없다.



얼굴이 크고 맑은 낮달맞이.



꽃들은, 계절은 정직하다. 서두르지도 않고 미련을 두지도 않는다. 봐 주지 않아도 홀로 피고 때가 되면 홀연히 스러진다. 억지가 없는 거다. 우리가 꽃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화단 아래 기대어 자라고 있는 바늘꽃과 자주달개비다. 생각보다 몸집이 커서 나의 작은 정원에는 역부족이라 뽑아낼까 말까 저울질을 하는 줄도 모르고 태평하다.



수국과



매발톱. 매발톱은 작년에 대대적으로 뽑았지만 여전히 화단 곳곳에서 건재한다. 작년의 나를 비웃듯이 작년보다 자태가 곱다. 



옥잠화와 비비추, 페퍼민트가 얽혀있는 곳은 손도 대지 못하고 민트가 필요할 때만 가서 몇 가지 잘라온다. 지나치게 빽빽하다. 밀림 같은 저 푸른 이파리 야래에는 부추도 있고 딸기도 있었지. 아마?



델피늄.



일본의 자주 가는 린넨가게 앞에 피어있던 보라색 꽃, '아마'다. 얻어온 씨앗을 뿌렸더니 이렇게 고운 꽃들이 피어난다. 



수련.



기특하게도 홀로 싹이 나서 꽃까지 피운 디기탈리스



토마토. 고추랑 호박, 상추, 당근, 순무와 빨간무도 있다.



안개꽃이 이렇게 강한 것도 올해 알았다. 씨앗을 떨궜는지 봄이 되니 잔디 사이에서도 보이고 화분들 여기저기서도 보였다. 보라색과 흰색이 섞여서 마당 곳곳에서 나와 술래잡기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화분은 운이 좋아서 안개꽃으로 가득 덮였으니 화분도 못 치우고 꽃도 못 뽑는다. 여럿이 모이면 꽃들도 이렇게 힘이 세지는구나.



어째서 코스모스도 벌써 피는가?



눈길 한 번 안주는 다육이들도 꽃을 피운다. 남편의 아이들.



블랙커런트를 딴 날이다. 이렇게 해놓고 골목에 앉아있으면 누가 와서 사주려나? 



앵두도 있고 바질도 있는데. 그뿐인가. 블랙커런트랑 순무도 있답니다.



일 년 중 제일 예쁜 달이기도 하고 밖에서 놀기도 가장 좋은 달이 유월이 아닌가 한다. 그늘은 시원하고 바람도 선들선들 분다. 낮도 길다. 장마가 오면 마당의 꽃들 중 여럿은 마지막이다. 



오뉴월 땡볕도 겁내지 않고 맨발에 맨손으로 허구한 날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거울 앞에 앉아서야 선블록이라도 바를 걸 한다. 발도 그을리고 손도 그을렸다. 지난 출장 때 약국에서 화이트닝 핸드크림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던 이유다. 종일 밖에 있다가 저녁에 화이트닝 핸드크림 한 번 바르는 것으로 나의 손과 발이 다시 희어질 리는 없겠지만 그 순간은 얼마나 반갑던지 덜컥 집어왔다. 그리고  삼 주가 다 되어가는데 몇 번이나 발랐을까? 잠시 외출하는데도 눈만 내놓고 마스크며 장갑으로 중무장하는 여인네들도 과하다 여기지만 너무 무신경한 나도 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얼른 손 씻고 크림 듬뿍 바르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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