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수다

책과 정원

by 라문숙


눈을 뜨니 조용한 집 안, 열어놓은 창문 너머도 고요한 어둠에 잠겨있다. 계단 참에 불이 켜져 있다. 온도계를 보니 31.9도다. 요즘 우리 집 식구들의 생체 시계는 해가 뜨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각자 돌아가는데 나로 말하자면 저녁 먹고 올라와서 책상 앞에 도 닦는 것처럼 잠시 앉았다가 무자비한 더위에 그만 져버리고 선풍기를 안고 건너편 방의 침대로 간다. 평소 선풍기 바람이 몸에 닿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터이지만 요즘은 도리가 없다. 발치에 선풍기를 놓고 침대에 누우면 이번에는 높은 침대가 원망스럽다. 선풍기의 키를 최대한으로 높여봐도 시원치 않아서이다. 자다 깨다 잠의 밀도가 형편없다. 오늘도 그렇다. 저녁 설거지하고 났는데 7시가 조금 넘었길래 신이 났었지만 책상 앞에 앉는 순간 한숨부터 났다. 오늘도 어쩔 수 없겠구나 싶어서 책을 들고 침대로 갔는데 무더위와 발바닥 통증에 짜증과 심통을 다스리기는 역시 부족한 나의 인내심.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방금 일어났다. 어쩐 일인지 조금 숨이 쉴 만하다. 입추가 지났다더니.


요 며칠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니 더위 탓에 부엌에서는 수양하는 것처럼 살고 잠시 틈이 나면 거실 긴 의자에 눕거나 식탁 앞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고 그도 저도 아니면 옷이 땀에 젖는 것도 모르고 나가서 풀을 뽑았다. 아래층에 그대로 있으면 시원하련만 꼭 자기 방에 혼자 있고 싶은 여자여서 주섬주섬 보따리 챙겨서 올라오면 더위에 무력해지는 건 순간이라 고작 할 수 있는 건 찬물 뒤집어쓰고 누워서 책 들고 보다가 그대로 떨어트려 몇 번 얻어맞고 잠에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숯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은 땡볕에 연일 빨아대는 덩치 큰 빨래들도 바사삭 마르고, 탄탄한 나무 도마에 무심한 칼질로 밥도 그럭저럭 지어먹었으며 몸은 나른했으나 정신은 오히려 맑아져서 집중할 수 있던 책 읽기가 있었던 요 며칠을 돌아보니 오호, 내가 그래도 참 잘 살았네.



이탈리안 파슬리 씨앗 한 봉지로 벌써 몇 년째다. 씨앗 뿌려놓고 싹이 나면 좋아하며 애지중지하는 것도 잠시, 어느새 잊혔다가 한여름 뙤약볕에 이파리 주위가 노랗게 변할 즈음이 되어서야 아깝네 어쩌네 하면서 주섬주섬 챙겨 먹기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커다란 토분 하나 가득 자라던 걸 모조리 뽑아서 초록색 잎이 연한 것만을 골라 꽃처럼 담갔다가 도마에 올려 타닥타닥 다져서 샐러드에 넣었다. 파슬리나 고수의 향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는 고개를 외로 돌리지만 샐러드라면 언제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는 남편은 신이 났다.



쿠스쿠스와 토마토, 파프리카와 양파에 파슬리를 섞었다.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가 전부인 간단한 샐러드인데 만드는 동안 여름의 색을 가지고 노느라 더워도 더운 줄 몰랐을 정도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다시 읽으면서 꺼내 놓은 책들이 한 아름이나 되었다. 그중 첫 번째 '행복의 충격'을 저 샐러드 만들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더 아름답고 그리워서 급기야 이번에는 눈물까지 절로 나더라는 이야기. 새 책이 나와서 샀는데 그건 들추지 못하고 지난 책을 다시 읽는 이유는 무엇이며, 옛 책을 다 읽었으면 새 책을 읽을 일이지 더한 옛 책들을 쌓아두고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여 아직 '다시, 책은 도끼다'는 펼치지도 못했다는 변명.



애호박과 파프리카, 가늘고 긴 소시지를 쫑쫑 썰어서 살캉하게 볶았다. 붉은 양배추도 같은 크기로 썰고 쿠스쿠스를 불려서 섞었는데 이번에는 올리브오일에 앤초비를 넉넉하게 다져 넣었다. 여긴 파슬리를 넣지 않았으므로 아이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는 역시 맛보다 색에 집중한다.



오랫동안 쟁여두었던 렌틸콩을 드디어 삶았다. 파슬리 줄기와 양파, 월계수 잎을 넣고 콩이 무를 때까지 삶는데 뚜껑을 여니 맛있는 냄새가 폴폴 나서 매우 신기했다. 오렌지를 깍두기처럼 썰고 참치와 다진 파슬리를 넉넉하게 넣었다. 화이트 와인 식초와 올리브오일, 오렌지 과즙으로 버무린 특이한 샐러드. 맛은 좋다.



어느 날은 어여쁜 복숭아를 사 왔으나 맛도 향도 없어서 반으로 갈라 병조림을 만들기. 맛없는 복숭아에 심통이 나서 아끼던 국수를 삶아버린 날. 맑은 맛국물에 차게 식힌 소면을 담고 우메보시 한 알을 얹었던 어느 날의 점심.



육개장을 끓이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마음의 예비 같은 게 필요한 법인데 이번에는 어쩌다가 보니 덜컥 말을 꺼낸 격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고 끓는 솥 옆을 지켰다. 어릴 적 외가에 갔을 때 외숙모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며 매운 연기에 눈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던 생각이 났다. 하필 다져놓은 마늘도 떨어지고 고사리를 챙기는 것도 잊어서 말린 고사리 불려서 삶아내는 수고까지 해야 했으나 시원하니 맛있다는 평을 들어서 마무리는 잘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8월의 마당에는 옥잠화와 부레옥잠이 경쟁하듯 피어난다. 프록스와 금잔화는 이 더위를 아랑곳하지도 않는 듯하지만 바라보고 있는 나는 슬며시 걱정이 되어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 즈음에 한 번씩 보러 나간다. 며칠 전에 상사화 한 줄기가 올라오더니 곧 꽃을 피우게 생겼다. 왜 홀로 나왔을까? 설마 올해 상사화가 그 한 줄기로 끝나는 건 아닐 테지. 날씨도 사람의 기분도 전혀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시절이 되어 꽃이 나오는 게 당연한데도 기적 같고 어쩌다가 모자라고 늦기라도 하면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쨍한 햇볕에 이불을 널면서 프로방스의 분수를 상상하고 낭만과 현실의 경계를 생각한다. 머루가 낭만이면 등나무는 현실인가. 파고라 위에서 종이 다른 두 식물이 서로 만나 얽히는 걸 볼 때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걸 떠올린다. 햇살이 뜨겁고 투명할수록 카뮈의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스프링클러로도 무지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낭만을 버릴 수 없는 8월.




얼음은 녹아 금방 없어지는 것이라, 나는 늘 한때를 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의 꿈, 그것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어린아이도 나이 지긋한 어른도 다들 신기해하는, 이내 사라지는 비눗방울 같은 한때였다.

그 느낌을 정말 좋아했다.
그러니 그것을 잡아 조금이라도 어디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얼음은 엷고도 달콤하게 사라진다. 그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다. 그저 단순히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 자잘하고 하얀 안개 같던 것이 점차 덩어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물이 된다. 모두 달콤하게 배로 들어간다. 그런 느낌.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p.100


남편이 육개장과 복숭아 조림과 샐러드를 들고 본가에 간 동안에 나는 서점에 있었다. 들고 간 책을 읽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있어서 좋아하는 교보문고다. 서점에 피서인파라니 조금 우습지만 사실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책상 위에는 들춰볼 수나 있을까 하는 정도로 책이 쌓였다. 책을 읽는 것보다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고 그것보다는 책을 구경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짧은 소설. '책은 도끼다' 이후로 빠져 있는 '지금 이대로의 삶에 집중하기'를 이 작은 책에서 바나나도 이야기한다. 요 며칠 책을 읽으면서 이제 다른 길을 엿보는 것 따위는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기에는 이제 좀 늦지 않았느냐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이면 지금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맞다. 무더위 덕에 어느 해의 여름보다 책을 제법 읽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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