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모종은 고작 5개를 심었는데 종류는 3 가지다. 찰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 방울토마토다. 마땅히 심을 곳이 없어서 화단 중간중간 비는 자리(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빈 곳처럼 보이는 자리)에 심었다. 양귀비와 아네모네에 밀려서 맥을 못 추다가 양귀비가 스러지자 조금 기운들을 차렸는지 이제는 제법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토마토 잎을 건드리면 나는 향기가 왜 그렇게 좋은지 그 냄새만 맡으면 기운이 난다. 풋풋하고 거친 냄새, 짙푸른 잎사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 냄새에 정신이 팔리는 봄 한 철을 지나고 나면 붉디붉은 토마토가 열리는 계절이 어느새 와 있다.
하긴 냉장고에는 일 년 내내 토마토가 들어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스튜에 토마토가 들어간다. 해독주스 만들 때도 토마토가 주인공이다. 파스타 소스나 피클, 샐러드에도 토마토가 빠지면 서운하다. 일 년 내내 슈퍼마켓에 가면 토마토를 살 수 있다. 요즘에는 종류도 여러가지라서 구경하는 재미에 고르는 재미가 더해졌다. 그럼에도 마당에 심은 토마토 앞에 가서 딸 거 없나 살피는 한때는 요즘 가장 살맛 나는 순간이라 해도 되겠다.
기본은 샐러드다. 보통은 푸른 잎채소와 함께 올리지만 마땅한 샐러드감이 없을 때는 마당에서 뜯어온 바질과 토마토만으로도 충분하다. 올리브 몇 알을 더하면 화장한 것처럼 맛도 모양도 예뻐진다. 올리브오일에 소금, 후추면 끝인데 간혹 화이트 와인 식초를 살짝 더할 때도 있다. 감칠맛이 더해진 토마토 샐러드가 담긴 볼은 언제나 싹싹 비워진다.
바게트나 발효빵이 딱딱하게 굳어서 그대로 먹기 어려우면 올리브오일을 팬에 두르고 바삭하게 굽는다.
토마토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바질 잎은 가늘게 채를 치거나 손으로 뜯어서 넣고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에 섞어 이십 분 정도 재운다.
바삭하게 구워낸 빵의 표면에 생마늘을 반으로 잘라 문지르면 마늘즙이 빵에 묻어서 풍미가 더해진다. 호박잎이 풍성한 요즘에는 호박잎 접시에 올리면 한층 화려한 식탁이 된다.
주말 아침, 마땅히 올릴 게 없을 때 쓱싹 만들어서 도마 위에 푸른 잎을 깔고 식탁 가운데에 두면 눈 만큼 입도 즐겁고 손도 바쁘다. 토마토 브루스게타다.
빵을 좋아해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빵은 그냥 두고 오기 어렵다. 그중 인기 없는 빵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모두 꺼내어서 한 입 크기로 썰어서 오븐 팬 위에 놓고 올리브유를 뿌린 다음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 10분 정도 굽는다.
역시 토마토를 한 입 크기로 썰고 바질 잎을 뜯어 넣는다. 발효빵이 200그램 정도면 토마토 2개에 바질 잎은 취향껏 넣는다, 마침 페타 치즈가 있어서 비슷한 크기로 조금 썰어서 더했다.
올리브오일 2 큰 술에 발사믹 식초 1 큰 술, 메이플 시럽 1 큰 술을 섞어서 드레싱을 만든다.
양파 작은 것 반 개를 다져서 넣는다. 빵 구운 것에, 토마토와 치즈, 바질을 모두 담고 드레싱을 뿌린다.
메이플 시럽이 없으면 꿀을 더해도 독특한 맛이 난다.
빨간색과 초록색 사이로 흰색이 보인다. 입보다 눈이 더 먼저 호강을 하는 간단 음식. 판차넬라 샐러드다.
언젠가 이딸리에서 바게트를 사는데 낯이 익은 셰프가 다가와서 바게트를 어떻게 먹느냐고 묻는다. 반 정도는 그날 먹고 남은 건 대체로 판차넬라 샐러드를 한다고 하니까 벌써부터 신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그거 먹다 남은 빵으로 만드는 재활용 음식이잖아요. 식초도 많이 들어가고. 셰프의 세계에 재활용은 금기인가 보다 했었다. 그 후로 판차넬라를 만들 때마다 그 아저씨 생각이 어쩜 그렇게 생생하게 나는지.
재활용이라도 좋다. 토마토가 있으면 토마토로 만들고 딸기가 있으면 딸기로, 천도복숭아가 있으면 천도복숭아를 구워서 만들기도 한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아빠랑 시장에 갔다. 엄마가 토마토도 사 오라고 했다. 엄마가 단골로 다니던 과일가게에서 '토마토 좀 주세요'했더니 한 관 드릴까요 한다. 국민학교 다닐 때였는데 한 관이 열 근이란 건 알았다. 엄마랑 정육점에 가면 고기 한 근 주세요, 두 근 주세요 했던 기억이 났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린 동시에 '한 근만 주세요' 하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과일가게 아저씨가 기가 막히다는 듯 토마토 큰 것 한 알을 내밀며 이게 '한 근입니다'하는 거다. 고기 한 근이 주는 느낌과 토마토 한 근이 주는 느낌이 너무 달라서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동안에 아빠가 그러면 한 관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검은 비닐봉지에 토마토를 사들고 돌아오는 시장 골목에는 노란색 백열등이 나란히 달려 있었다. 육류는 한 근이 600그램이고 야채나 과일은 한 근이 375그램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토마토 한 근이 토마토 한 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