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비우는 아내의 변명같은 샐러드
요리책을 넘기다 보면 제일 시선이 가는 음식이 샐러드다. 다채로운 재료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른 과정에 실패가 거의 없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우리 식구들은 샐러드를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밥처럼도 먹는다. 샐러드만으로도 끼니 해결이 가능하다. 정 많은 아줌마들은 집을 비울 때 따끈한 국과 짭조름한 반찬들을 만들어서 놓아두지만 냉정하고 쌀쌀맞은 나는 냉장고에서도 며칠 보관 가능한 차갑게 먹는 샐러드를 남겨둔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프도 없다.
1. 치커리와 자몽, 오렌지 샐러드
고불고불한 어린잎들과 싱그러운 자몽과 오렌지 과육에 제비꽃 봉오리를 올린 샐러드를 어느 잡지에선가 보았다. 인상이 깊었던가 어느 날 혼자 마당에서 놀다가 삼색제비꽃을 보고 만들어 보았다. 말 그대로 꽃 샐러드다. 드레싱은 올리브오일과 화이트 와인 식초를 2:1비율로 섞은 후에 오렌지 과즙을 짜서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저 접시 들고 마당을 돌아다니며 혼자 먹었다. 꽤 큰 접시에 수북하게 담았는데 먹다 보니 어느새 비워진 접시, 아무도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2. 소시지 쿠스쿠스 샐러드
쿠스쿠스는 놀랍다. 끓는 물을 부어서 부드럽게 한 다음에 다양하게 사용한다. 음식에 볼륨을 더하기 좋은 재료다. 수프에 넣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기도 한다.
쿠스쿠스를 넣은 샐러드는 식사 대용으로 좋아서 출장 가기 전에 만들어 놓고 가는데 소시지와 함께 단단한 야채들을 부드럽게 볶아서 감칠맛이 나게 만들었더니 만든 그날에 동이 나버렸다.
3. 루콜라 샐러드
루콜라는 혼자 있어도 빛이 난다. 붉은 양파를 가늘게 썰고 올리브 몇 알을 올린 후 올리브오일과 앤초비 다진 것을 섞어서 버무린 후 소금과 후추를 갈아 뿌렸다. 매콤하고 단단한 초록의 맛.
4. 감자샐러드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서 삶는다. 포근하게 삶아지면 뜨거울 때 으깬다. 감자샐러드는 뜨거울 때 으깨두는 것만 잊지 않으면 실패할 염려가 없다. 양파와 오이는 가늘게 썰어서 소금에 절여 물기를 거두고 햄을 작은 크기로 잘라서 더한다. 마요네즈와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완성이다.
으깬 감자에 양파와 오이, 햄을 넣고 마요네즈, 소금, 후추를 넣고 버무리면 완성인데 버무리는 동안 감자가 생크림이나 크림치즈처럼 부드럽고 매끈하게 변해서 감자샐러드를 만들고 있다가 느닷없이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 터키 목동의 샐러드
요리책에서 보고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다. 터키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이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던 샐러드다. 사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토마토랑 오이, 파프리카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대충 썰어서 담고 올리브오일과 식초, 소금, 후추, 레몬즙 등을 뿌려 먹었던 것 같은 분위기다.
야채들을 썰고 드레싱을 섞으면서 이게 무슨 맛이 날까 했었다. 꼭꼭 씹을수록 신선함이 더해지면서 그리운 이가 생각났을 거다. 함께 먹고 싶은 사람, 맛있는 걸 해 주는 사람, 엄마나 아내나 연인이 그리워지는 맛. 남자들은 모두 목동이다. 이렇게라도 만들어 먹을 줄 아는 목동과 그렇지 않은 목동이 있을 뿐.
바게트나 캄파뉴 종류가 있어서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6. 새우와 브로콜리 샐러드
계란을 삶고 브로콜리와 새우를 데쳐내고 양파를 절여서 꼭 짠 다음에 요구르트와 마요네즈, 소금, 후추로 버무린 샐러드다.
빵 사이에 넣어 먹기에도 좋다.
이렇게 골고루 야채와 해물을 섞어 만들어 놔도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아이는 새우만 먹을 거다. 브로콜리는 남편이 먹어주고, 나야 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뿐.
7. 껍질 완두콩과 민트 샐러드
완두콩은 데치고 민트 잎과 함께 올려 레몬 소금과 올리브오일 섞은 걸 뿌렸다.
모양과 색만큼 예쁜 맛.
8. 새우와 푸실리 샐러드
푸실리를 삶는 시간에서 일 분을 남기고 새우를 넣는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올리브오일을 넉넉하게 두르고 마늘을 칼등으로 으깨어 한두 개 넣고 마른 고추도 부셔서 넣고 월계수 잎 한두 장을 넣어 마늘이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서 담고 레몬을 얇게 저며서 넣고 양파도 다져서 넣는다. 화이트 와인 식초와 소금을 약간만 넣고 마늘 볶은 오일을 붓고 모두 함께 섞는다.
냉장고에 넣고 이삼일 동안 샐러드로 먹기에도 좋고 한 끼 식사로도 너끈하다.
여름에 좋은 냉 파스타다.
9. 닭 가슴살과 소시지, 쿠스쿠스의 만남.
냉장고에서 차갑게 굳어버린 닭 가슴살이 두 덩어리 있었다. 소시지 두 개를 꺼내서 작은 깍두기 크기로 썰었다. 닭 가슴살, 소시지, 양파를 모두 함께 넣고 팬에 볶았다. 마늘 저민 것과 마른 고추 부순 것을 함께 넣고 볶으면 맛있는 냄새가 난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쿠스쿠스를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덮고 익힌다. 쿠스쿠스 200그램에 물 250ml 정도면 맞춤이다. 엄마 없을 때 냉장고 뒤져서 꺼내 먹으라고 유리용기에 담아 두었다.
10. 올리브 절임.
바닥에 조금씩 남아있던 올리브를 모아서 레몬을 저며 넣었다. 바질을 다져 넣고 마늘도 으깨 넣고 마른 고추도 으스러뜨려 넣었다. 소금과 후추를 갈아 넣고 올리브오일에 버무려 3 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으면 된다. 이것도 아내 없을 때 꺼내 먹으라고 유리 용기에 넣었다.
11. 그리고 오해
4월의 정원, 6월의 마당 이렇게 마당의 꽃들을 보여드리면 그 많은 꽃들이 한 날에 다 피어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단어벌레는 매일 그렇게 화사한 꽃동산에서 사는 줄 아시는 거지요. 4월부터 6월까지 꽃이 많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시간 차이를 두고 피어나게 마련이라 동시에 그 모든 꽃들 사이에서 꽃놀이를 하며 살 수는 없답니다. 마당, 크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 놀기에 딱 좋은 크기입니다. 모자를 써도 목덜미는 가려지지 않아 목뒤가 까맣게 탔어요. 매일 흙을 만지니 손톱 밑에 흙이 끼고 손톱도 거칠어졌습니다. 가시에 긁히고 모기에 물린 데다가 햇볕과 바람에 시달리며 삽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그늘 구석에 몰래 피는 꽃들을 찾아내는 게 즐거워서 웃으며 살 뿐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올린 샐러드를 오늘 다 해 먹은 줄 아시면 곤란합니다. 아마 유월 초부터 모인 사진일 거예요. 오늘은 출장 가기 전에 식구들 먹을 거 만드느라 아침은 주스 한 잔 마시고, 점심은 감자 샐러드 만들고 남은 감자에 바질 페스토 버무려서 먹었어요. 저녁은 찬 밥 데우고 어제 먹다 남은 김치 볶음을 데워서 때웠습니다. 그리고 질솥에 밥하는 거 알려주고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실제 밥을 해 먹을지는 알 수 없으나 가르쳐줬으니 밥이 없어서 못 먹었다는 소리는 못 할 거예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