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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20. 2016

2016.7.11 - 단상

                                                                                         

1.
자잘한 일 몇 가지가 있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도 날씨가 너무 더웠길래 우선 집에서 나가고 볼 일이었다. 9시 30분에 집에서 나갔다. 은행 창구의 여직원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기도 하고 또 매정하기도 했다. 웃음 앞에서는 같이 웃고 입매가 어그러지면 마음이 졸아든다. 간단한 일인 것 같은데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입력하고 출력하고 사인을 요구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한다. 그냥 자동화기기에서 처리하고 말 걸. 

2. 
백화점 출입문은 왜 그렇게 무거울까. 누군가 앞에서 힘차게 밀고 들어가면 그 반동으로 내게 향하는 문은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 같은 문을 겨우 잡아서 반대 방향으로 밀었는데 꼼짝도 안 한다. 아직 관성이 남아있는 탓이리라. 숨을 고르고 문이 가진 힘을 놓아버리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밖에 안 걸렸지만 아, 그 사이에 내 손을 바라보며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눈들은 얼마나 많았는지. 아무도 문에 손을 대지 않았고 단지 기다리기만 했다. 마치 왜 문 하나 제대로 열지 못하고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짧은 순간에 문을 놓아버리고 그만 돌아서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얼른 지하 떡집에 가서 제사편을 주문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뒤돌아설 수가 없었는데 내 손에 집중된 그 눈들의 주인공은 정작 문이 열리자 나보다 더 먼저 들어오고 나간다. 키가 컸던 어느 아줌마는 내 팔 밑으로 몸을 숙이며 지나가기까지 하였다. 언젠가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제대로 접지 못해 낑낑거리는 나를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 주었던 젊은 아가씨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지.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다. 이런 사람도 있도 저런 사람도 있는 거야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주 잠깐 진한 슬픔 같은 것이 올라오던 오전의 한순간. 그러니까 언젠가 내게 닥쳐올 지치고 우울한 날을 가뿐하게 이겨낼 예방백신 같은 걸 만든다는 생각으로 좋은 일도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도 덤으로 아주 넉넉하게 많이 해두었다.



3. 
집 근처에 이런 멋진 장소가 있어서 참 좋다. 오늘같이 더운 날, 천장이 높고 실내는 서늘해서 몇 시간 빈둥거리면 정말 좋으련만. 



4.
먹는 일은 참 중요하다. 그래서 매일 하면서도 어쩌다 하루 오늘은 안 하겠노라는 말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남이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들어온 날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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