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성 구술/이은영 글/김용택 엮음
난 맏며느리이지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지 않는다. 홀로 되신 시어머니는 내게는 시누이가 되는 비혼의 막내딸과 함께 지내신다. 우린 일 년에 두 번 추석이랑 시아버지 기일에 잠시 만날 뿐이다. 그 외에는 전화도 방문도 없으니 시집살이는 물론 손톱만큼의 잔소리도 듣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한번 음식을 장만해서 남편이 가져간다. 국이랑 고기 재운 것, 반찬 몇 가지, 과일, 직접 구운 빵도 종종 섞인다. 보름이면 찰밥에 나물을 장만하고, 엄마가 김치를 보내주시면 김치도 싸고 고추장도 챙긴다. 음식을 가져가는 건 남편이 도맡는다. 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뒷모습에 가슴이 휑하다.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럴 때면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 홀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하거나 메아리도 없는 외침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허전하다. 유난히 그들의 침묵이 버겁고 무거워져서 공연히 심술이 나면 이렇게 살기 싫다고 말하는 대신 직접 모시고 함께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에둘러서 말을 건네 보기도 한다. 함께 살면 서로 불편하고 어려우니 그냥 이렇게 각자 편히 살면서 그때그때 음식만 해다 드리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장만해드리는 게 좋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남들은 따로 나와 살고 싶어 안달인데 큰며느리랑 함께 살기를 마다하시는 시어머니를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거라고 한다. 그건 제대로 볼 수 없는 이들이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경우 종종 일어나는 착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지낸다. 큰며느리 이은영은 시집와서 이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병원에 어머니를 빼앗겼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온종일 부지런히 일을 하며 평생을 산 시인의 어머니는 체구는 작지만 강단이 있고 당찬 분이어서 새 며느리는 몰래 운 적도 입을 닫아버린 적도 많았지만 그들은 함께 살며 차츰 웃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그러다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인의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시인의 아내가 받아 쓰고 시인의 어머니가 그걸 보고 다시 썼다. 그렇게 병원에서 글을 익힌 어머니는 이제 아들의 책을 보고 제목을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풍경이 보인다. 구십을 앞둔 어머니와 글쓰기를 하고 조각천을 사다가 들이밀며 바느질을 하게 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새삼 내가 많이 외로운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녀들이 부러워서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고, 그녀들이 부러워서 입맛도 잃었다. 며칠을 끙끙 앓았다.
나의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지만 병원신세를 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시고 아직도 매일 수영장에 가실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게다가 시누이는 그림자처럼, 입속의 혀처럼 엄마를 보살피니 남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남편은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 엄마와 전화를 하지만 좀처럼 내게 전화기를 쥐여주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가끔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고 싶다. 간이 안 맞는다거나, 고기가 질기다거나, 김치가 너무 익었다는 둥, 일 년에 두 번 손을 잡고 애썼다는 말씀 한마디 가지고는 모자라는 것이다. 나는 시인의 아내는 아니지만 시어머니랑 남편 흉도 보고, 동서 흉도 보고 오늘은 뭐가 먹고 싶다. 오늘은 뭐가 하고 싶다는 말씀도 들어보고 싶다. 그렇기만 해도 나는 내가 며느리인 걸 알 것 같다. 하긴 우리 둘 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으니 언젠가 나도 '나는 참 늦복 터졌다' 하고 웃을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