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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y 19. 2017

나의 사랑하는 생활 17 -은방울꽃과 제비꽃

                                                                                                                                                                                                                                                                                     

은방울꽃이 안 보여서 끌탕을 하다가 빽빽하게 돋아난 잎을 들추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앙큼하게 숨어 있는 하얀 종들이 여럿이었다. 가위를 들고 꽃대가 없는 이파리들을 솎아냈다. 바람도 통하고 햇볕도 들어갈 수 있도록. 꽃대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지금도 허리와 어깨가 뻐근하다. 꽃은 오월의 며칠 동안 향기로 답을 해줄 것이다.



은방울꽃의 이파리를 솎아내다 보니 이파리들이 만든 그늘 아래는 또 다른 세계였다. 접시꽃 싹도 있고 어린 백합도 보였다. 물론 잡초도 많았다. 으슥하고 시원해서 잡초들이 자라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던 모양이라 청화 쑥부쟁이나 수레국화의 싹보다 키가 크고 몸도 튼튼해서 벌써 꽃을 피운 녀석들도 여럿이어서 잔소리를 하며 뿔을 뽑고 가위질을 하던 중에 보라색 꽃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제비꽃이다. 문득 떠오르는 에쿠니 가오리의 '제비꽃 설탕 절임', 제비꽃이 많으면 나도 한 번 만들어볼텐데 말이다.



가끔은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을 한 번씩 뒤집어봐도 괜찮겠구나 싶다. 은방울꽃그늘에 제비꽃이라니! 횡재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은방울꽃의 향기가 아직 연한 것을 보아 봄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데다가 제비꽃마저 단정하게 잘라 화병에 담았으니 올해 꾸미고 싶었던 마당의 색과 모양의 원형을 찾은 듯하여 반갑고 고맙다. 향기로 말하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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