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문숙 Oct 04. 2018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생각날 거에요


한때 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게마다 <길모퉁이 중국식당>을 권했던 적이 있었다. <너 없이 걸었다>란 작품을 읽고 난 후 저자가, 문장이, 마음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산문집이다. 허수경은 시인이고 나는 그녀의 산문도 시처럼 읽는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 읽기도 하고 여전히 권하기도 하며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알라딘에서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란 신간을 발견했다. 반가워서 클릭해보니 <길모퉁이 중국식당>의 개정판이었다. 그녀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란 소식이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다. 갓김치, 깻잎장아찌, 고춧잎 무침 같은 반찬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시인이 된 것처럼 감격해하며, 혹은 그녀 대신 먹어치우는 것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혼자 머쓱해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허수경은 좀처럼 독일을 떠나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 짧게라도 올 수 있다면 작게 만든 보따리라도 한 번 들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하곤 했었다. 정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의 뒷장에는 2011년 2월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꾼 꿈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편지가 들어있지만 나는 그걸 끝까지 읽고 싶지 않아서 고집스럽게 그 부분을 펼치지 않고 있다. 정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늘 아침, 그녀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