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비가 내리면

by 라문숙


종일 비가 내린다. 침대 옆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인다. 감기몸살이 찾아온 덕에 오히려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으니 모든 일에는 좋고 나쁨이 동시에 있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귀 기울여 들으면 빗방울이 어디에 어떻게 떨어지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지붕이 없는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메아리 같은 울림을 가지고 있다. 자갈이 박힌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떨어지자마자 낮게 흐르고, 바람에 날려 벽에 부딪힌 빗방울은 눈물처럼 길게 흘러내리는데 이 모두가 배수구 근처에서 만나 작은 물길을 만든 후 역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땅속으로 난 길을 따라 산자락을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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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는 일년 내내 아름답지만 그중 으뜸은 늦가을이다. 아침마다 붉게 물든 이파리를 발치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자랑하듯 날 기다리고 섰다. 열매가 익어갈 즈음 때도 없이 드나들곤 하던 지빠귀들은 요즘 보기 힘들다. 가을에는 새들도 조용해진다. 떨어진 이파리들이 아깝지만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오늘 세찬 비에 내일이면 가지가 앙상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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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와 밤나무, 머루나무, 벚나무에서 떨어진 잎들도 비에 젖는다. 진달래의 잎은 밝은 노랑으로, 수국은 서늘한 빨강으로 목련은 깊은 갈색으로 물이 들었다. 초록 잎을 가진 것은 주목과 소나무, 그리고 장미다. 놀랍게도 장미는 여전히 향기 짙은 꽃을 피웠다. 며칠전 내린 서리에 부레옥잠이 검게 타버렸는데 장미는 오늘도 향기로 비에 맞서고 있으되 나는 그 모습이 딱해서 눈을 돌리고 만다. 언젠가 거울 속에서 본 눈 아래 그늘을 지우고자 애쓰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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