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텅 비었다. 노란 단무지가 한 봉지 남아 있을 뿐. 반달 모양을 살려 나박나박 썰었다. 고운 고춧가루와 설탕 약간에 참기름 몇 방울이면 반찬 한 접시는 만들 수 있었다. 치자물을 들였다는 노란 단무지 위에 붉은 고춧가루를 반 숟가락 뿌렸다. 색이 부족하다. 요 며칠 봄맞이 마당 정리를 하던 중에 눈여겨보아둔 게 있었다. 그거면 되겠다 싶었다. 잔디밭 끝, 오래되어 부서져가는 나무 화분에서 새로 돋아난 쪽파들을 봐두었던 것이다. 한 줌 뽑아들었다. 흰 수염 같은 뿌리가 실했다. 가뭄이 파뿌리에도 보였다. 날을 벼린 칼로 탱글탱글한 쪽파를 잘게 썰어 노랗고 붉은 단무지 위에 뿌렸다. 어쩌자고 내게는 봄도 이렇게 오는지. 애꿎은 쪽파를 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