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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06. 2020

여자의 책

메리 올리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버지니아 울프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산딸기잼을 발견했다. 지난여름 아침저녁으로 산딸기를 따곤 했는데 아마 그때 만들었을 것이다. 산딸기는 마당 끄트머리에 있는 화단에서 살고 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화단 가장자리를 까치발로 딛고 서서 산딸기를 땄다. 손바닥에 올려놓기에 넘칠 정도로 열매가 많은 날은 앞치마 자락을 주머니처럼 움켜쥐고 산딸기를 담았다. 까칠한 이파리 뒤에 숨어있는 열매가 없는지 나뭇가지를 들춰가며 살피느라 가시에 긁히기도 했지만 산딸기는 정말 예뻤다! 잼은 아마도 산딸기를  줌씩 얻을  있는 계절의  흥분이 가시던 즈음에 만들었을 것이다. 끝물의 산딸기들은 그대로 나무에 남아서 농익은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흐린 회갈색의 겨울 마당에 오랜만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병에 들어있던 산딸기 잼은 보석처럼 빛난다. 기억이란 건 참 쓸만하다. 얼마나 많은 지나간 장면들이 내 속에 들어있을 지도 궁금하다. 기억은,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은 눈치채지 않게 홀로 자라서 무언가가 되기 마련이니까.



메리 올리버가 그녀가 기록한 속기나 문구들이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을 때, 그리하여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자신을 데려간다고 했을 때(메리 올리버, 긴 호흡, p.22) 그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기뻤다. 새해 아침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강렬한 기억의 힘,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거나 회고하는 게 아니라 장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생각했던 건 그러니까 작가의 문체나 의도가 아니라 우리 속에 내재하는 어떤 힘 혹은 능력을 고스란히 되살려낸 것이란 걸, 바로 그 점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특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앤젤리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메리는 또다시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건 그 순간 자신이 초래한 것이 분명한 모든 상처들을 한순간에 다 본 것 같아 가슴이 타 들어가는 듯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녀 메리 멈퍼드는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생각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무엇이든 가능하다, p.16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희망이나 기대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워 이야기의 끝이 있기는 할 것인지 의심하는 순간 혹은 이제 듣고 보기를 그만 멈추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미루게 하는 힘이 있다. 눈을 가린 손가락 틈 사이로 엿보듯 읽기를 이어가다가도 너무 힘들어 이야기 밖으로 무사히 걸어 나갈 수 있을지,  산다는 게 왜 이래야 할까 싶은,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섬광처럼 사랑과 이해와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희망]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기로 마음먹은, 절망을 들여다 보기를 겁내지 않는 이에게만.


 고통과 연민, 희망과 사랑을 나란히 세워놓는 데 성공한 소설이다. ‘루시 버튼'의 확장판, 혹은 해설판  아니 주석 같은 작품. 가슴이 뻐근하다가 쿵쾅거리다가 그래서 죽을 것 같다가 허공에서 뛰어내리면 바로 그때 자유를 만나게 되는, 그래서 뛰어내릴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허락된 짜릿함이 들어있다. 이미 책장에 꽂아두고 다른 책을 읽으려 하는데도 자꾸만 돌아서서 나를 쿡쿡 찌르는 작가, 그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국 여인들에 관한 언급이 소설에 꼭 필요한 걸까를 질문하는 내가 우습지만 아마도 곧 [에이미와 이저벨]을 주문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회고록 [지난날의 스케치],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과 [휘파람 부는 사람]을 연이어 읽었다. 많은 책을 읽겠다는 욕심은 일종의 망상, 혹은 헛된 치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전속력으로 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때가 있다. 완벽한 몰입이 주는 자유의 기쁨, 낚싯줄처럼 가늘지만 강한 연결을 세 작가에게서 발견하는 즐거움, 맥락도 설명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곤 하는 어떤 '장면'들에 관한 완벽한 이해, 그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해는 바로 내 안에 숨어있던 어떤 장면들의 힘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장면은 ‘과거를 특징적으로 그려내는 자연스러운 방법이고, 인생의 실체다. 장면이 영속적인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파괴적인 숱한 세월을 견디고 온전히 남지 못할 것이다. 장면이 실체라는 증거다(버지니아 울프, 지난날의 스케치,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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