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안다. 마당 왼편으로는 키가 큰 벚나무들이 있고 아랫동네로 내려가다가 두 번째 모퉁이를 돌면 목련, 내리막길이 끝나고 작은 교회를 지나면 산수유 몇 그루가 있다. 그 나무들의 꽃은 갑자기 혹은 저절로 핀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봄날, 눈에 들어온 봄꽃 무리에 놀라서 마당의 아이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매일 들여다보고 묻는다. 언제 깨어날거냐고 물을 주며 재촉한다. 매화가 한 송이씩 피어나기 시작하면 기특하고 어여뻐서 키도 작고 아직 꽃도 그다지 많지 않은 어린 나무인 그것을 세상 최고로 친다. 매화의 꽃 봉오리는 천천히 벌어진다. 연둣빛 꽃봉오리가 조금씩 부풀어가면서 하얀 꽃잎이 드러날 때 봉오리마다 별 모양의 균열이 생기는 걸 보고 감탄한다. 별을 새긴 꽃 봉오리는 아마 어디에도 없을 거라며 혼자 으쓱해하는 나다. 문득 꽃들도 내게 관심이 있을까 궁금해지면 자신이 없어지지만.
봄이 왔고 나는 매일 아침마다 마당에 물을 준다. 마른 흙은 물에 젖어들면서 부드러워지고 색이 짙어진다. 커피에 물을 붓는 것 같다. 커피가루가 물에 젖어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푹 꺼지는 것, 그것과 똑같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무심히 보다가 움찔 놀랄 때가 있다. 흙이 말랐을 때 보이지 않던 등이 넓은 벌레 한 마리가 물방울을 피해 잎들 사이로 숨어 들어가 흙 속으로 사라진다. 아, 너구나 싶다. 처음 보는 녀석은 아니다. 흙 빛을 보호색으로 한 벌레,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양새가 꼭 두꺼비 같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느리고 밋밋한 녀석. 혹 작년의 그 녀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구분할 도리가 없으니 내게는 어엿한 '너'다.
이사 와서 겨울을 보내고 처음 맞이한 그 봄에 나는 좀처럼 마당을 떠날 수 없었다. 신기하고 어여뻤다. 지금이야 그때 그렇게 예뻤던 게 봄인 줄 알지만 그때는 마당인 줄 알았다. 봄이 내 마당에만 있는 것 같아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버텼다. 코로나 때문에 꼼짝 못 하는 올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식구들이 나가면 종일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방과 세탁실에 있다가도 마당에서 급하게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후다닥 다시 뛰쳐나오곤 했다.
그날도 아침부터 화단에 물을 뿌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바람꽃이 있던 자리였을 것이다. 물을 주다가도 잡초가 보이면 뽑아내곤 했는데 새싹들이 자리를 잡고 마구 나오던 시기라 땅은 포슬하고 부드러워서 풀 줄기를 잡고 잡아당기면 뿌리까지 부드럽고 순하게 딸려 나왔다. 평소처럼 잡초 몇 포기를 뽑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잡초가 있던 부근의 흙이 느리고 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였다. 나는 미처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흙빛 생명체가 땅 속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꼼짝도 못 하고 주저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서 집안으로 도망을 갔다. 그날 나는 마당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퇴근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마 두꺼비였을 거라고 한다. 겨울잠을 자던 두꺼비가 밖으로 나온 것일 거라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두꺼비를 또 만날까 걱정스러웠지만 차츰 마당에 난만한 봄을 그대로 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나가기만 하면 두꺼비를 만났다. 두꺼비는 항상 혼자였다. 느려서 보고 있으면 답답했다. 집 앞 골목에서, 작은 숲으로 통하는 문 옆에서 예의 그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녀석은 정말 느림보여서 언뜻 보면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두꺼비가 보이지 않던 날, 나는 조금 궁금했다. 산으로 갔는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는지, 며칠 동안 걱정도 조금 했던 것 같다. 여전히 봄이 오면 두꺼비 생각이 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자리에는 아직도 바람꽃이 살고 있다. 이제는 그곳에서 튤립도 살고 수국도 자란다. 프록스와 백합으로 좁아진 마당 깊숙한 곳에 아직도 두꺼비가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매일 물을 뿌리면서 놀라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다.
요즘 마당은 빈 화분과 부엽토와 흙, 모종과 겨울을 난 나무, 호스와 호미와 고양이로 붐빈다. 볕이 들락거리고 새소리가 바람을 타고 건너간다. 마가렛을 어디에 심을지 고민하고 백합 구근은 화단과 화분 중 어디가 좋을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끝은 언제나 있다. 왜 캄파눌라가 왜저곳에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 심은 줄 알았던 루피너스 모종이 화분 뒤에 남아있는 걸 보고 놀란다. 며칠 동안 계속 자리를 바꾸고 스스로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렵지만 즐거운 일, 되는대로 놔둘 거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니 아침마다 고개를 늘이고 조금 더 나아질 방법을 궁리한다.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수긍해야 한다. 그렇다. 마당 가꾸기는 글쓰기와 닮았다. 나는 두꺼비처럼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