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컵을 씻어 밥을 지으면 세 식구가 한 끼를 먹기에 알맞은 양이 된다. 찬밥이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다가 식탁에 한 사람이 빠지는 날에야 찬밥이 생긴다. 낮에 혼자 있을 때 남은 밥은 다음 날 나의 점심 끼니가 되어주었지만 식구들이 세 끼를 함께 먹는 요즘에 한 공기 남은 밥은 오히려 골칫덩어리가 된다. 한 공기의 밥을 나눠 먹을 수는 없으니 새로 밥을 짓고 남은 밥은 냉장고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대개 그렇다는 말이다. 저녁에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려고 보니 전날 남은 밥이 솥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밖은 어둑하고 주방은 아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별 이유도 없이 밥솥에 남은 밥 한 공기가 불편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손에 잡히는 그릇에 대충 덜어 밥솥 옆에 놓아두고 김치를 볶고 채소를 찬물에 담그고 물을 끓였다.
"쿠쿠가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주걱으로 밥을 저어 공기에 담았다. 오늘도 식탁에는 둘 뿐이다. 매일 사용하는 밥공기 세 개 중 하나만 제 자리에 있었다. 나머지 두 개는 식기 세척기 안에 들어있었지만 닦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마땅히 밥을 담을 그릇이 없었다. 아직 김이 나는 밥을 남편 앞에 놓고 아까 찬밥을 덜어놓은 공기를 내 앞에 놓았다.
밥그릇 안에서 뭉쳐 있던 식은 밥알은 입안에서 서로 어우러지지 못해 오래 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밥 먹는 속도도 느려지고 배도 더 부른 것 같았다.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밥공기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남은 밥인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는 얘기를 해줬다. 왜 찬밥을 먹느냐고, 그럼 지금 한 밥이 다시 찬밥이 되지 않느냐고, 당신 그런 적이 없지 않으냐고, 왜 안 하던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와르르 쏟아졌다.
"......"
왜 그랬을까?
남편 말이 맞다. 나는 식구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남은 찬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다. 아깝다고 남은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으면 끼니를 거를지언정 억지로 먹지 않는다. 식탁에서 나의 모토는 좋아하는 음식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 맛있게 먹기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반찬통을 그대로 식탁에 올리지 않고 밖에서 사 온 햄버거나 감자튀김도 접시에 다시 담는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었다. 오늘만 해도 남은 약식을 담았던 법랑 용기를 데워서 그대로 식탁에 올리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니 어제저녁에도 찌개를 냄비째 식탁에 올렸었다. 작은 냄비라고 하지만 좀처럼 없던 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세척기 안의 밥공기를 꺼내어 닦은 후 더운 밥을 담았을 것이다. 두서없는 생각들이 주방 정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본다. 표정 없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이제 대충 살기로 한 건가? 노선을 달리 하기로 한건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타협의 전초전인가? 무엇을? 왜? 나의 가장 큰 적은 나다. 거울 보고 웃어본다. 바보 같다. 오늘 밤은 크림을 듬뿍 바르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