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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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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22. 2021

내가 하는 일, 내가 가진 것

2021. 1. 22

  간밤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이 얕아질 때마다 비가 계속 내리는지 귀를 기울였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눈이 살짝 내려앉은 게 보였다. 비가 눈으로 바뀌었거나 눈 내리는 소리를 빗소리로 잘못 들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빗방울이 하얗게 얼어붙었거나! 그렇다. 내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상식과 논리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머무르면서 동시에 모든 곳에 닿고 싶어서다. 매일 다시 시작되는 하루에, 아침마다 다시 찾아오는 오늘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 멈추지 않고 두리번거리지도 말고 달려 나가는 것, 그걸 하고 싶었다. 판단하지 말고 결론 내리지 말고, 지난 시간의 흔적으로 지금을 바라보지 말고 다가올 시간을 위해 오늘을 낭비하지 않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옮기고자 했으나!


얼어붙은 데크


  거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잔디밭은 얼음판이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물이 빠진 논에 살얼음이 언 것처럼 마른 잔디가 얼음에 갇혀 뾰족한 이파리 끝만 바늘처럼 솟아있었다. 마당이 얼어붙었다는 내 말에 남편은 눈이 채 녹지 않고 얼어있는 위에 비가 다시 내린 탓이라고 했다. 매사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남편다운 말이다. 나는 얼음 속에 갇힌 잔디들을 분해해버리는 그런 식의 말하기가 편하지 않다. 무엇이든 설명해서 이해시켜야 한다면 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이아몬드>가 좋다고 얘기하면 그런가 보다 한다. <슈베르트>를 견딜 수 없어요 라고 하는 이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구나 받아들인다. 애초에 내 안에 '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날부터 나는 힘이 센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봄이 온 듯 포근해서 나른했지만 역시 힘이 필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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