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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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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y 30. 2021

오월 마당에서


  비가 잦은 오월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깬다. 빗물을 받아들인 숲이 웅성거리는 통에 아침들이 소란했다. 은방울꽃과 둥굴레 꽃이 오월을 열고 작약과 모란이 그 뒤를 이었다.


은방울꽃


  나갈 때마다 바구니를 곁에 끼고 무릎걸음으로 마당을 한 바퀴 돈다. 개미자리, 별꽃, 주름잎들이 잔디보다 더 많아 보인다. 보일 때마다 잡아 뽑는데도 역부족이다. 잡초를 뽑아내기에는 비 그친 다음날이 제격이다. 비에 젖은 흙이 부드러워져서 뿌리까지 쉽게 뽑혀 나온다. 눈을 치떠 올려 거울을 노려보면서 새치를 골라내던 언젠가가 생각난다. 풀뽑기는 딱 그만큼의 개운함을 가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는 후련한 것 같아도 뒤돌아서면 거기 또 남이 있는 게 보인달까.


토마토 꽃이 피었다
장미
장미는 11월까지 계속 피기는 하지만 오월 장미가 으뜸이다


루피너스 싹이 올라오고 고양이는 상추밭에서 잔다. 중순에 접어들면 장미가 한창이고 뾰족한 수국 꽃잎이 하나씩 열린다. 손등은 벌써 그을렸고 손수건을 동여맨 뒷 목은 보이지 않으니 알 길이 없지만 분명 손등과 차이가 없을 테다. 상추쌈을 싸고 부추전을 부치고 돌미나리를 무친다. 토마토 곁순을 딸 때마다 숨을 모으고 로즈메리와 월계수 잎을 잘라내면서 황홀하겠지.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으니 곧 여름이다.




  오후만 되면 낮잠에 빠진다. 밤에 잠을 설치는 것도 아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피곤한 것도 같고 긴장한 듯도 하다. 심심하고 멍하고 불안하고 그런 거, 부풀대로 부풀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까 아슬아슬한 풍선 같은 꼴이다, 끊어진 줄을 흔들흔들 매달고 마을 위로 날아가는 빨간 풍선.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버지니아 울프를 연달아 읽으면 몸이 먼저 안다. 적확하고 날카롭고 망설이지 않는 문장들이 만드는 풍경들이 물 위에 뜬 배처럼 출렁거리면 나도 덩달아 흔들리느라 피곤한 밤이 짧다.


바구니의 쓸모


비가 오지 않을 때면, 나는 매일 잡초를 뽑는 일로 소일합니다. 요즘처럼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육체적인 노동이 늘 반나절 혹은 한나절을 버티게 하는 아편이 되어주는군요. 그런 일을 할 때는 물질적인 충동이나 사색으로부터 완전히 순수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중략)
 
이런 노동은 무언가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지요. 그것은 의식 자체를 위한 것이며 영원히 새롭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서너 개의 채소밭이 깨끗하게 다듬어졌을 때, 비로소 그 밭들에는 녹색의 채소가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1932년 7월, 헤세가 게오르크 라인하르트에게 보낸 편지


  내가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을 노동이라 할 수는 없다, 물론 서너 개의 채소밭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헤세의 이 문장에 일말의 저항감도 없이 공감한다. 무엇에서든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마당으로 난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때마다 그예 몸살이 나고 만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까지 책장을 뒤적인다.

  그러니까 요즈음 책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건  두어 달 전 프루스트의 [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로 시작된 것이다. 유제프 차프스키가 수용소에서 기억에 의존해 프루스트를 강의했던 기록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베르너 헤어초크의 [얼음 속을 걷다]를 동시에 읽으며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곳에 다다르는 게 의미가 있을지, 안 해도 되는 일들에서 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납득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비행기가 있고 자동차도 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산길을 걸어야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그 일을 자신을 위해 하는 게 아닌 데다가, 죽음 바로 앞에까지 갔던 이가 다시 삶 쪽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바로 잘 모르는 타인의 걷기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왜 내 이야기 같은 건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읽는 건 개인적인 영역 중에서도 깊고 은밀한 차원에 있다. 제발트의 [전원에 머문 날들]을 읽으며 낄낄거렸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재미있는 부분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분명 있겠지만 웃긴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나였으니 알려 줄 방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터. 그 사이 봄은 지나가고 지금 마당은 작약과 으아리가 한창이니 매일 내가 할 일은 밥 짓고 풀 뽑는 일.


장미와 작약들


   오래전에 쓰인 글을 읽으면서도 방금 일어났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작가의 가슴속에서 함께 살아왔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형태를 갖추고 스스로 몸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던  시간들이 함께 보인다. 거짓은 없다. 꾸밈도 없고. 그래서 무겁지 않지만 진실이라 허망하지 않다. 장미와 작약이 한창인 마당에서 생각하는 건 그런 글에 한 뼘 정도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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