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밖에 나갔던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소쩍새가 '왔다'고 알려준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않고 '왔다'고 하는 데에는 우리만 아는 이유가 있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니까 십 년은 족히 된 옛날이야기다.
그날은 아침부터 소쩍새 소리가 유난했다. 작은 산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터라 새소리가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이었지만 소쩍새가 아침부터 울다니 별일이었다. 전날 밤에 비바람이 요란했던 터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새가 뒤풀이라도 하는가 보다 했다. 울음소리는 머뭇거리고 숨었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소리는 점점 커져서 산속에 살던 소쩍새가 집 근처로 다가오는 듯했다. 설마 새가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는 거냐고 우스개를 주고받았던 며칠 동안 소쩍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었다. 목련 그늘 아래 앉아서 잡초를 뽑던 날도 소쩍새가 울었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고 날카로운 지 바로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너무 크지 않아?”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지?”
가만히 서서 듣다 보니 소리는 집안에서 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높은 천장과 타일 바닥 탓에 소리가 울리는 거실에서 소쩍새 울음은 새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컸다. 남편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벽난로였다. 난로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벽난로 유리 안쪽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소리쳤다.
“여기 있네!”
문을 천천히 열고 푸드덕거리는 소쩍새를 가까스로 잡은 남편도 나도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렸다. 새는 남편의 손 안에서 차츰 조용해졌다. 새는 크고 동그란 눈, 낙엽을 닮은 색조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큰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고요한 눈을 가진 새였다. 마당으로 난 문을 열고 새를 놓아주었다. 두 마리였다. 새들은 숲으로 날아갔다. 어둡고 좁은 벽난로 안에서 소쩍새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함께 있어서 조금 나았을까? 분명 천둥 번개가 요란했던 그 밤에 비바람을 피하려고 굴뚝으로 숨어들어 내려왔다가 나가지 못한 것이었으리라. 동그랗고 커다란 눈, 갈색의 깃털, 놀란 표정의 새가 자꾸만 떠올라서 소쩍새를 검색해 봤다. 그림책에서 보던, 눈이 커다란 올빼미와 꼭 닮았다. 천연기념물이고 멸종위기 등급 LC(관심대상 – 멸종 위험이 낮고 위험 범주에 도달하지 않음)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아직은 괜찮다는 의미로 읽히기는 하나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이라면? 집안에 날아든 새 울음소리를 며칠이나 들으면서도 새들이 갇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무심한 인간들의 세상에서? 그 이후 봄이 무르익어 등에 내려앉는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면 소쩍새가 궁금했다. 올 때가 되었는데도 산을 울리는 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봄이 봄 같지 않았다.
거실 통유리창에 부딪혀 기절하는 새들이 등장하는 십여 년 전의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전설이다. 그때 우리는 발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낯선 이주민이었다. 아이는 하굣길에 뱀을 보았다고 했고 나는 바람꽃이 피던 마당 가장자리에서 두꺼비와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집 옆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꿩들이 날아오르고 청설모가 나무를 기어오르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눈이 내리면 고라니가 먹이를 찾아 집 바로 옆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눈을 굴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김이 서렸던 겨울이 있었다. 여름에는 데크 오른쪽에 서면 산그늘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는 아이들 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키가 큰 나무들을 바라보곤 했다. 햇볕이 강한 오후에는 그늘도 짙어서 그네가 보였다가 말았다가 했는데 아이들 웃음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가 낮아져서 마을 전체가 춤을 추는 듯했다. 나뭇가지에 앉아서 졸던 새들이 갑자기 날아오르면 고여있던 그늘이 푸르게 흔들렸다.
어느 해 여름방학이 끝나자 나무가 베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집들이 헐리고 빌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 이장님은 빌라를 두 동이나 지었으나 미처 분양을 하지 못했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마을은 점점 넓어지고 자동차는 늘어난 대신 느릿느릿 걸어 다니던 이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졌다. 빌라는 계속 늘어났고 이삿짐 차들이 자주 보였다. 이사 올 때 함께 왔던 강아지들 대신 길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우리들처럼 동네도 변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새로 생긴 식당과 미용실, 세탁소와 편의점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 어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작은 평상에 앉아 오고 가는 이들에게서 인사를 받던 할머니도,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중년 남자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언덕길을 오르기 직전의 대추나무집에서 초겨울이면 마당에 긴 나무 탁자를 꺼내놓고 절인 배추를 산같이 쌓아 올린 채 김장을 하던 풍경도, 산수유가 울타리 노릇을 하던 연립주택 단지 입구에서 돌아가던 바람개비나 바위에 묶여 있던 풍선들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아이들도 더 이상 그네를 타지 않는다.
오뉴월, 마을 풍경은 바뀌었으나 작은 숲을 옆에 끼고 앉은 집은 여전히 새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산비둘기 소리가 뜸해졌다 싶으면 곤줄박이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유난히 들리는 며칠이 있다. 하늘빛 긴 꼬리가 아름다운 물까치가 마당에 놀러 오고 빗속을 뛰어다니며 박새와 참새들이 수다를 떤다. 푸르스름한 초저녁에 소쩍새 울음이 들려오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도 요맘때다. 드물기는 하지만 청명한 저녁에는 뻐꾸기와 소쩍새가 동시에 울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산속 음악회의 유일한 청중이 되는 호사에 밥 짓는 걸 잊기도 한다. 입하를 며칠 앞두고 올해 처음으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십여 년 전 난로 굴뚝으로 떨어졌던 바로 그 소쩍새들이 다시 왔구나 싶었는데 남편 역시 같은 심정이었나 싶다. 그때 그 소쩍새가 다시 찾아준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 어지럽고 소란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서 안심할 수 있는 마음말이다. 오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은 소쩍새 첫 울음에 날아갔다. 그러고보니 소쩍새 역시 어쩐지 내게 알려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잘 있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잘 지내라고.